급식 비리 파문을 일으킨 서울 충암중고교가 독지가가 기탁한 돈을 임의로 급식비 부족분을 메우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6일 서울시교육청 감사실에 따르면 2013년 한 독지가가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1000만 원을 학교 측에 기탁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이 같은 성격의 돈은 지원 대상과 금액, 사유를 명기해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충암중고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급식비 부족분을 메우는 데 이 기탁금을 전용했다.
시교육청 감사실은 또 이 학교 영양사들이 조사 과정에서 “‘저질 급식을 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이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다는 게 원망스러웠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영양사들은 “내 책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학교 측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저질 급식을 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급식을 준비하는 것이 괴로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안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이 학교 총동문회도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급식 비리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한편 충암중고교 급식 비리 문제가 개별 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 학교 차원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급식 식재료 선택 과정에서 학교 재량권이 커 유착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식자재 납품업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불공정행위 의심 업체 357곳을 점검한 결과 이 중 19개 업체가 식자재 원산지 허위 표시, 위생불량으로 적발됐다. 이들 교육청은 이 업체들을 부정당 사업자로 등록하고 입찰을 제한하는 등 처벌을 강화했지만 올해도 불량 식자재 납품은 계속됐다.
7월 대구에서는 폐기해야 할 달걀 8t가량으로 달걀찜, 달걀탕, 달걀말이, 수제 돈가스 등을 만들어 대구 지역 중학교 2곳과 고교 5곳에 납품한 급식업체 운영자가 구속됐다. 이 업자는 폐기해야 할 달걀을 무허가 가공업자의 도움을 받아 액체 형태로 만들어 납품했다. 관할 교육청인 대구시교육청은 사건이 터지고서야 “학교 자율로 맡겼던 위탁급식 업체에 대한 점검을 정기적으로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5월 서울에서는 값싼 옥수수유를 섞어 만든 가짜 참기름을 학교급식 식자재 공급업체 등에 판매한 제조업자가 구속됐다. 서울시특별사법경찰에 따르면 이 제조업자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참기름 가격의 5분의 1 수준인 옥수수유를 10∼25% 섞은 ‘가짜 참기름’ 32만 L를 팔아 약 37억 원의 부당 수익을 올렸다. 가짜 참기름을 판 해당 업자는 학교급식업체나 학교에서 납품 기준만 맞추면 최저가격을 부르는 업체를 선정한다는 허점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충암중고교에서 불거진 급식 비리 문제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급식에까지 불통이 튀고 있는 분위기다. 자녀가 어릴수록 학부모의 불안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올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지역 유치원 중에서 급식 인원이 50인 미만인 곳 68곳을 대상으로 위생 안전을 점검한 결과 40곳이 ‘이상 있음’ 판정을 받았다. 1회 급식 인원 50인 미만 유치원은 ‘집단급식소 미신고’ 유치원으로 급식실을 반드시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며, 관할 구청의 의무 위생 점검 대상에서도 빠진다. 이들은 식재료 유통기한을 적지 않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사용하다 적발됐다. 일부 유치원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부침가루를 식재료가 아니라 세척용으로 썼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조리실에 냉난방 시설이 없는 곳도 상당수였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처음으로 급식실이 없는 곳의 급식 및 위생 상태를 조사한 결과 예상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며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급식 관련 문제도 총체적으로 짚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