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한글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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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프사’ 좀 올려라.”

“그게 뭔데?”

“ㅋㅋ 네 ‘프로필 사진’ 말이다.”

카톡으로 대화하다 친구에게 한 방 얻어맞았다. 이건 약과(藥果)다. 시험 답안지에 ‘ㅊㅋㅊㅋ’(축하축하)라고 쓰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신세대들이 즐겨 쓰는 줄임말을 e메일로 교육하는 회사도 있을 정도니.

문득 지난해 10월 한 중국인 유학생이 국어를 홀대하는 한국인을 꼬집으며 한 말이 떠오른다. “언어의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지만 그래도 중국은 스마트폰을 ‘즈넝서우지(智能手机)’라고 하는 등 고유의 표현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철학, 사회, 연애 등 우리가 내 것처럼 사용하는 상당수 낱말은 일본이 영어를 번역하며 만든 것이다. 대만도 호텔을 ‘대반점(大飯店)’으로 쓴다.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한글날 기념식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11월 4일 처음 열렸다.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세종실록을 근거로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을 반포일로 보고 기념식을 열었던 것. 바로 ‘가갸날’이다. 1928년 ‘한글날’로 바뀐 뒤 1945년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해 오늘에 이른다.

언중의 말글살이만큼이나 한글날도 부침을 겪었다. 내일은 공휴일로 다시 지정한 후 맞는 세 번째 한글날이다. 1991년 한글날은 ‘국군의 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빠졌다. 노는 날이 많으면 산업 발전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적절한 휴식과 여가는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2012년 말 다시 공휴일이 됐다.

한글의 자랑은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것. 24개의 자모로 1만1000개 이상의 소리를 내거나 적을 수 있다. 일본어는 48개의 문자로 300여 개, 중국어는 5만여 개의 문자로 400여 개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고 한다. 한글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인지 알 수 있다.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한글박물관도 지난해 문을 열었다. 세계 300여 개 대학이 한국어학과를 개설 중이고, 2000여 곳에 한국어 교육기관이 있다. 우리 말글의 미래가 밝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는 주시경 선생의 말씀을 오늘에 되살려야 할 때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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