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셀프의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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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어떤 여행지를 가든 자주 보게 되는 재미있는 물건이 있다. 이른바 ‘셀카봉’이다. 작년에 서울 인사동에서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는 긴 막대에 매단 스마트폰을 올려다보며 별의별 표정을 다 짓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더니 이제는 눈에 익숙해졌다.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실래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하면 가던 걸음 멈추고 “자,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어 주세요”라고 말하며 셔터를 눌러 주던 일들은 어느새 구시대의 풍경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의 등장으로 길을 물어볼 필요가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전이고, 이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할 일도 없어진 것이다. 타인과 대면하지 않고 혼자 노는 것에 초점을 맞춘 발명품들이 점점 ‘나 홀로’ 현대인을 양산해 가는 것 같다.

최근 러시아에서 17세 소년이 셀카(selfie)를 찍다가 9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 소년은 평소에 위험한 곳에서 아슬아슬한 장면을 셀카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곤 했는데 이렇게 위험한 셀카 촬영을 즐기다가 당하는 사고가 적지 않다고 한다. 남과 다른 특별한 ‘나’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욕구가 결국은 자기 자신을 파괴한 것이다.

이 뉴스에서 문득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가 떠올랐다. 나르시스는 자기를 사랑하는 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물에 비친 자기 자신에 반해 하염없이 물속만 들여다보다가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화면에 비친 자기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디지털 시대의 나르시스들은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또는 투우장에서 성난 황소가 달려드는 순간에도 셀카를 찍다가 죽음을 당했다.

이렇게 자신만 들여다보는 데에 길들여지면 타인과 눈 맞추는 일이 점점 어색해진다. 지하철 안에서 마치 혼이 나간 듯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어쩌면 눈 둘 데를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옆자리, 앞자리에 누가 앉았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휭 하니 내린다. 그런 모습이 현대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든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타인에게 무관심하다가 죽음이란 종착역에서 홀연히 내리는.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외롭다고 하면서도 막상 타인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물은 셀프, 커피는 셀프, 촬영도 셀프, 여기저기 셀프의 시대일망정 사랑조차 ‘셀프’인 건 황망하다. 나보다 더 소중한 타인을 갖지 못했다면 자신을 진정 사랑한 것이 아니므로.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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