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재해 아냐… 보험금 안줘도 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항소심, 기존 판례 뒤집어 논란 가열

보험 계약자의 자살에 대해 보험사가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약관에 자살을 ‘재해’로 규정하지 않았더라도 ‘정신질환이나 보험 계약 2년 후의 자살은 예외로 한다’는 특약이 있으면 보험사가 이른바 ‘자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생명보험사들은 2010년 4월 표준약관 개정 전까지 판매한 보험 상품에 ‘자살 때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특약을 두고 있었다. 재해사망 보험금은 통상 일반 사망 보험금의 2배 이상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자살은 약관에 나온 재해분류표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자살 보험금의 지급을 거부해왔다. 최종심의 결과를 봐야 하지만 이번 판결로 보험 가입자가 자살 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은 적어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부(부장판사 오성우)는 7일 철도사고로 숨진 박모 씨의 유족이 교보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재해특약에서 정한 보험금 5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박 씨의 주장은 이유가 없으며 1심 판결 중 보험사의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라고 선고했다.

박 씨는 2012년 경부선 철도 선로에 누워 있다가 화물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당시 수사기관은 박 씨가 채무 관계로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결론을 냈다. 박 씨의 유족은 이를 근거로 2004년 박 씨의 이름으로 계약한 생명보험 및 재해사망 특약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했다. 박 씨가 가입한 보험의 재해사망 특약 약관에 따르면 자살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이나 계약 개시 2년 후 자살’은 예외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사는 자살은 재해특약에서 정한 재해가 아니라며 주계약에 따른 일반 사망보험금만 지급하고 재해특약에 따른 보험금 5000만 원의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박 씨의 유족은 보험금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1심에서 “약관대로 지급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은 앞서 2월에도 비슷한 사례의 보험 가입자 측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 자살이 보험사고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재해특약 체결 시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가입자가 자살 보험금 지급 근거로 제시한 재해사망 특약 규정에 대해서는 “특약의 취지와 쌍방의 진정한 의사, 약관의 제정 경위 등에 비추어 ‘잘못된 표기’에 불과하다고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보험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번 판결로 자살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보험사와 가입자 간의 법적 다툼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말 현재 17개 생보사가 미지급한 자살 보험금은 모두 2179억 원이며 재해사망 특약이 들어간 보험계약 건수는 281만7173건이다.

박민우 minwoo@donga.com·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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