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경기 이천시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퇴원수속을 마친 김모 씨(59)에게 병원 주차장에서 장정 3명이 느닷없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김 씨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도복 끈으로 손발을 묶은 뒤 강제로 구급차에 밀어 넣었다. 2시간 뒤 김 씨가 도착한 곳은 충북 보은군의 한 정신병원. 병원 직원은 “조용히 들어가자, 너 하나 죽어도 표시나지 않아”라고 위협해 김 씨를 폐쇄병동에 넣었다. 낯선 병원에 감금된 김 씨는 이틀 뒤 밤 10시경 병원 3층 흡연실에서 뛰어내려 납치 56시간 만에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납치 및 감금의 배후에는 놀랍게도 김 씨의 아내 A 씨(51)가 있었다. A 씨는 김 씨가 납치되는 과정을 주차장에서부터 지켜봤고 폐쇄병동 직원들에게 남편의 격리를 신신당부해 둔 터였다. 남편과의 이혼 협의에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려 기획한 범행이었다.
2007년 결혼한 두 사람은 남편이 그 해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폭력성향을 보이자 관계가 틀어졌다. 3년 뒤 별거한 이들은 이혼과 재산분할 협의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A 씨는 시어머니를 찾아가 이혼 협의 중인 사실을 숨기고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고 치료를 받지 않는데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결혼 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고 속여 입원 동의서를 받아냈다. 수년째 왕래가 없던 시어머니는 며느리 말만 믿었다.
정신병원에 남편을 넣을 수 있는 서류를 구비하자 A 씨는 응급이송업자 B 씨를 불러 남편을 경기 이천시의 정신병원에 넣었다. 하지만 개방병동으로 외부와의 통신연락은 가능했던 이곳에서 김 씨가 이혼 협의 중인 사실을 병원 측에 알리며 법적 구제신청을 하자 아내는 B 씨에게 폐쇄 병동을 찾아달라고 요구한 뒤 납치를 지시했다. 폐쇄병동을 갖춘 충북 보은군의 정신병원 담당의사에게는 “남편이 과대망상에 성 중독증이 있다”고 부풀려 말했고, 의사는 김 씨의 주치의와 상의 한 번 없이 폐쇄병동 입원 조치를 내렸다. 심지어 당뇨증세가 있는 김 씨가 먹어서는 안 되는 정신분열증 치료제까지 처방하기도 했다.
김 씨는 탈출 직후 A 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 갈라섰지만 불법 감금 사실이 확정되지 않아 부인 A 씨에게 재산 분할로 23억 8000만 원과 위자료 4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둘 사이에 낳은 7살짜리 아들의 양육권도 빼앗겼다. 그러나 이혼 판결이 확정되고 나서 A 씨와 B 씨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했고, 이들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김 씨는 두 사람과 충북 보은의 정신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아내가 남편을 감금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고, 응급환자 이송업무 종사자는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판단해 감금이 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으며 병원은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감금 및 강제 입원조치로서 불법 행위를 저지른 점이 인정된다”며 “함께 위자료로 2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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