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돈 때문에… 택시기사 보호벽 없던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5일 03시 00분


서울시 “폭행-강도 예방” 추진하다 “여론 부정적” 핑계로 무기한 보류
市 예산 105억 들어 부담 된듯

서울시가 택시 승객들의 운전사 폭행을 막기 위해 추진하던 ‘보호격벽’ 도입이 무산됐다. 보호격벽은 택시 운전사 보호를 위해 운전석 옆면과 뒷면에 설치하는 투명 플라스틱 벽이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당초 내년에 도입될 예정이던 택시 내 보호격벽 설치 사업이 무기한 보류됐다. 택시 운전사와 승객들이 보호격벽 설치에 부정적인 데다 예산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여성이 운전하는 택시 35대에 시범적으로 보호격벽을 설치했다. 보호격벽을 희망하는 택시 운전사에게는 총 설치비(약 30만 원)의 절반을 지원했다. 시범사업 때 택시 운전사와 시민들의 반응이 좋으면 내년부터 이를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택시 운전사들의 반응이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최근 사업을 포기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웠다. 택시 운전사들이 서울 시내에서 운행할 때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서울시가 밝힌 이유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서울에서 운행하는 택시는 약 7만 대. 모든 택시에 보호격벽을 설치할 경우 서울시는 전체 비용(약 210억 원)의 절반인 약 105억 원을 마련해야 한다. 지원 비율을 30%로 낮춰도 약 63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택시 운전사들도 설치비 50%(약 15만 원)뿐 아니라 나중에 철거할 때 자비를 들여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별도의 지원 근거가 없어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의회에서 이를 통과시켜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라며 “당초 내년 예산안에 포함할 예정이었지만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해 제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취 승객의 택시 운전사 폭행이나 강도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을 감안할 때 서울시의 보호격벽 설치 포기가 섣부른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보호격벽 설치와 관련해 택시 운전사나 시민을 대상으로 정식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별도의 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언론 기사에 달린 누리꾼 의견과 운전사 의견을 다각도로 종합했다”고 해명했다.

현재 보호격벽을 시범 설치해 운행 중인 한 여성 운전사는 “택시 운전사 폭행이 하루가 멀게 일어나고 있어 보호격벽을 원하는 동료들이 많다”며 “가장 큰 문제는 비용 부담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단계적으로라도 지원하는 안을 검토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버스와 택시 운전사 폭행 사건은 약 3200건(서울 지역은 약 1100건)에 이른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택시기사#보호벽#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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