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10월호/추적]
정부업무 합동평가단 지자체 유착 의혹
● “시험감독이 수험생 과외 지도하는 격”
● 평가 따라 ‘인센티브’ 차등 지급…지자체 민감
● 7년 연속 선발 L원장, 충북 ‘컨설팅’ 싹쓸이?
● L원장 “평가지표 2개만 담당…평가 개입 불가능”
행정자치부는 2009년부터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전국 16개 광역지자체에 대한 정부업무 합동평가를 실시해왔다. 자치단체에서 수행하는 국가위임사무와 국가보조사업, 국가주요시책 등에 대해 매년 평가한다.
합동평가 결과에 따라 정부에서 지원하는 ‘재정 인센티브’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아쉬운 지자체로서는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2012년까지 매년 300억 원이 인센티브 예산으로 책정됐다가 2013년 140억 원, 2014년 185억 원으로 줄었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다.
정부는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온라인 평가시스템(VPS)을 도입했다. 합동평가단도 9개 분야(일반행정, 사회복지, 보건위생, 지역경제, 지역개발, 문화관광, 환경산림, 안전관리, 중점과제)별로 전문가와 교수들을 중심으로 매년 새로 뽑고, 그 명단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 평가단 명단은 ‘비공개’
관련기관 관계자는 “평가단과 지자체 간 유착 고리가 형성되는 것을 막으려면 평가단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행자부 측도 “평가단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1년 단위로 관련 부처에서 2배수를 추천받아 평가단을 새로 짜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합동평가단 선발 과정에 의문이 제기됐다. 특정인들이 평가단에 매년 선발되고, 이들 중 일부가 지자체와 모종의 유착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이다.
‘신동아’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강창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제주 갑)실의 도움을 받아 먼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7기 정부합동평가단 명단을 입수해 분석했다. 평가단 수는 매년 달랐다. 1기는 50명인데, 2기엔 200명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가 3~7기는 130명 안팎으로 구성됐다.
이들 명단을 분석한 결과, 지난 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매년 평가단에 포함된 외부 전문가가 4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H연구원 L원장, M대 S교수, I대 Y교수, S대 J교수다. 조사 대상에서 정부합동평가 가중치 연구 등을 맡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들은 제외했다. 이 단체는 전국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출연해 만들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이가 H연구원 L원장이다. 서울에 위치한 H연구원은 2007년 L원장이 설립했으며 연구원이 3명뿐인 조그만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가 충북 청주시로부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시정평가 연구용역 사업을 따냈다. 연구기간은 1년. 연구비용은 2012년 1억1610만 원, 2013년 1억3589만 원, 2014년 1억2705만 원으로 매년 1억 원이 넘는다. 더욱이 모두 수의계약이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5000만 원 이상이면 수의계약을 할 수 없는데도 이를 위반한 것이다. 청주시는 올해 초 8000만 원짜리 ‘행정조직 개편방안 연구용역’을 H연구원에 또 맡겼다. 이것도 수의계약이었다. 용역 보고서 ‘베끼기’ 논란
청주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칙은 공개경쟁입찰을 하는 게 맞지만, 예외적으로 계약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면서 “담당 부서에서 H연구원과의 계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심의를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L원장이 부서 업무 담당자와 시 내부 실정을 잘 알아서 맡긴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모든 연구용역 사업의 ‘연구책임자’는 L원장이고, 직원 3명이 ‘연구원’과 ‘연구보조원’ 노릇을 한다. 이들이 지난 3년간 청주시에 제출한 ‘시정평가 결과보고서’를 검토해봤다. 목차부터 심지어 시정평가제 운영 개선방안까지 거의 유사하다. 어떤 대목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순서만 바꿔놓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그동안 직원 대상의 의견조사를 실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출하는 실적자료에 있어서도 대폭적인 간소화를 추진하였으나, 아직 많은 청주시 공무원들은 시정평가제에 대해 적절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2012)
그동안 직원대상의 의견조사를 실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출하는 실적자료에 있어서도 대폭적인 간소화를 추진하였으나, 청주시 공무원들에게 아직 시정평가제는 많은 부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2013, 2014)
L원장은 이에 대해 “동일한 틀을 사용하다보니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개선방안보다는 평가가 중요하다”면서 “매년 각 부서에서 낸 지표를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매년 바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주시청 측 관계자의 설명은 다르다. “세부적인 성과지표는 매년 부서에서 받아 국·도정 시군종합평가와 연계해 활용하는데, 계속해서 말들이 나와서 내년부터는 다른 업체를 물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원장은 청주시에 시정평가와 행정조직 개편방안 연구용역뿐 아니라 갖가지 컨설팅도 했다. ‘정부합동평가대비 컨설팅’ ‘시·군 종합평가 전문가 컨설팅 위탁교육’ ‘정부합동평가대비 역량강화 컨설팅’ 등 정부합동평가와 직·간접적 관련 있는 사업들이다. 청주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2010~2014년 5년간 L원장이 청주시로부터 의뢰받은 사업만 20여 건에 달한다.
L원장으로부터 컨설팅이나 위탁교육을 받은 지자체는 청주시뿐 아니다. 충청북도를 포함해 충주시, 제천시, 보은군, 진천군, 음성군, 괴산군, 증평군 등 충북지역 지자체 대부분과 삼척시, 평창군, 영동군, 철원군 등 강원지역, 그리고 정읍시와 순천시, 창원시 등 여러 지자체가 그에게 자문했다.
“기초 평가가 곧 광역 평가”
도대체 이유가 뭘까. 한 지자체가 낸 보도자료 내용 중 일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시군종합평가 대비 컨설팅 실시…7년 연속 최우수 달성을 위해’라는 제목 아래 ‘L원장은 행정자치부 지방자치단체 국정시책 합동평가단 위원을 역임한 이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결국 행자부 합동평가단 위원이라는 자리가 그의 컨설팅 계약과 무관치 않은 셈이다.
L원장은 “대개 시·군 단위에서 의뢰가 들어온다. 정부합동평가는 시·도(광역) 단위다. 평가에 영향을 주려는 건 아니고, 평가지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평가가 온라인 평가시스템(VPS)으로 이뤄지고, 평가위원 한 사람이 수많은 평가지표 중 2개만 담당하고 있어서 평가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고 부정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지자체 담당자들의 평가지표 이해를 돕기 위해 중앙부처, 지자체, 외부 전문가까지 참여하는 워크숍이 정부 차원에서 매년 한 차례씩 실시된다. 한 지방자치행정 전문가는 L원장의 활동에 대해 “시험감독이 평가받아야 할 수험생을 상대로 과외 지도를 하는 격”이라면서 “시도 단위의 평가는 시·군·구에서 올라온 자료를 취합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평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행자부 담당 관계자는 L원장과 마찬가지로 “평가위원 한두 사람이 지자체에 컨설팅을 하거나 연구용역을 수주했다고 하더라도 정부합동평가의 전체적인 절차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다만 컨설팅과 연구용역 사업이 정부합동평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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