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떠들다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 ‘아몰랑’이란 말에 선생님이 “쓰레기 단어 쓰지 말라”며 발끈했다는 것이었다. 여성혐오 단어라고 한다.
‘모르겠다’의 장난스러운 표현인 줄 알았다.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서 봤고, 뉴스에도 무책임을 꼬집는 제목으로 뽑혔기에 유행어인가 보다 했다. 검색해 보니 고연전에 고려대 응원단이 내건 현수막이 재치 있다. ‘아몰랑! 그냥 연대 자체가 짜증나.’
‘아몰랑’은 원래 여성혐오 사이트에서 유행한 말이라고 한다. 한 여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쓴 글을 혐오 사이트 회원들이 퍼다 조롱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녀는 ‘대한민국에 비리가 너무 많다’고 썼는데 지인이 무슨 비리가 많냐고 묻자 ‘몰랑! 그냥 나라 자체가 짜증나’라고 대답했던 데서 유래됐다.
여성학자 윤보라 씨는 방송에 출연해 “여성에 대한 편견, 예를 들어 ‘무지하다, 혹은 비합리적이다’ 등과 맞아떨어져 유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객관적 사실을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자기 생각과 감정대로 행동하는 일부 여성의 특성을 과장한 혐오 표현이 ‘아몰랑’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감정 안테나가 남성에 비해 훨씬 발달되어 있다. 고감도 안테나를 가진 여성에게 ‘싫은 느낌’은 실질적 고통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재빨리 회로를 차단할 수밖에 없다. SNS 여성의 ‘아몰랑’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혐오스럽다’는 쪽이다. 둔감한 남성이라도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안테나가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조금만 아파도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오는 고향 어머니의 신통 노하우가 바로 감정 안테나다. ‘초고감도’라서 싫은 느낌에는 몸서리를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한 영화사이트 대표가 ‘아몰랑’을 썼다가 항의 받고 사과하는 과정이 논란을 빚었다. “여성혐오 표현이니 쓰지 말라”는 쪽과 “어디에나 쓸 수 있는 농담 혹은 풍자”라는 주장이 맞섰다.
‘무조건 쓰면 안 돼’ 식이라면 되레 여성혐오 사이트에 동조해 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몰랑! 쓰지 마’로 오해받을 수 있다.
말에서 중요한 것은 맥락과 의도인데 관계없는 맥락에까지 핏대를 올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울 때도 많아 오해를 빚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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