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고3 부모들이 만나면 자식 관련 ‘무용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누구는 새벽까지 인터넷 게임에 빠진 아들 때문에 밤새 성경을 옮겨 적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하고, 누구는 딸에게 스마트폰 대신 2G폰을 사줬더니 남친과 통화하느라 전화비가 20만 원 나왔다고 한다. 아들에게 ‘지금 자면 마누라 얼굴이 달라진다’고 했더니 “아빠를 보니 공부해도 소용없네” 하더라는 ‘셀프 디스’ 엄마까지 이야기꽃이 만발한다.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요즘 아이들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결론은 항상 ‘공부 싫어하는 아이는 빨리 다른 소질을 찾아줘야 한다’로 내려진다. 그러나 국영수 못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루저 취급을 당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도 너무 힘든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경제학으로 본 교육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를 연구한다. 한국 교육은 사회 전체의 자원 활용이란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을 결정하는 상황은 두 가지로 자원을 낭비한다. 우선 공부에 소질 없는 아이에게 쓸데없이 자원을 쓴다. 둘째 공부에 소질이 있어도 부모가 돈이 없으면 아이는 재능을 썩히게 된다.
독일 초등학교는 선행학습이 금지되고 공부는 학교에서만 한다. ‘평등한’ 조건에서 공부하니 누가 공부에 소질이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4학년 말, 공부에 흥미 있는 아이는 인문계 상급학교로 가고 흥미 없는 아이는 일찌감치 실업계로 간다. 독일은 세금으로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더 효율적으로 자원 활용을 하는 셈이다.
고려대가 내년부터 점차 성적장학금을 없애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생활보조금을 주겠다고 발표해 논란이 뜨겁다. 성적에 대한 인센티브였던 장학금을 복지 수단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변화다. 염재호 총장은 “성적에 대한 보상은 다른 것으로 해야 한다. 미국 아이비리그도 성적장학금은 없다”고 했다.
대학만 나오면 취업이 되던 1980, 90년대와 달리 지금은 학점을 0.1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성적장학금이 없어도 학점을 잘 따 좋은 데 취직하려는 인센티브가 충분하다. 부모가 부유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한 명문대 동창회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아도 고마워하지 않고 수여식에도 잘 안 나타나 동창회 장학금 폐지를 검토한 적이 있을 정도다.
반면 저소득층 학생들은 유아 때부터 사교육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에 들어간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니 어찌어찌 다닌다 해도 고등학교와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 마련하랴, 생활비 마련하랴 공부할 틈이 없다. 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은 훌륭한 자원 배분이다.
고려대의 장학금 혁신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조앤 롤링은 가난한 이혼녀였다. 그는 인생의 낙오자였지만 정부로부터 한 달에 60만 원가량의 생활보조금을 받은 덕분에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영화 뮤지컬 등을 합해 248억 달러(약 28조 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는 ‘더 타임스’에 기고한 ‘싱글맘의 선언’이란 글에서 “영국의 복지제도가 나를 만들었다”면서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조세피난처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고려대에서 생활비를 보조받는 학생들 가운데 제2의 조앤 롤링이 나올 수 있다.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보조금은 사회통합과 소득 재분배 외에 경제적으로도 우리 사회에 이익이 될 수 있다. 복지는 때로 훌륭한 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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