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난망(難望)세대…한국 등지려는 젊은이들

  • 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30일 14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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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11월호/新東亞 창간 84주년 특별기획 | 2·0·4·5 광복 100년 대한민국]
한국 등지려는 젊은이들
2030세대는 한국의 미래를 ‘지속 쇠퇴(continuous decline)’로 인식했다. 전함은 침몰하는데, 아군(我軍)은 없다. 도움 줄 세력도 없다. 2030세대의 현실인식은 ‘각자도생 생존사회’, 딱 그것이다.


어려울 난(難), 희망할 망(望). ‘신동아’가 창간 84주년을 맞아 ‘미래 한국’을 가늠해보고자 20~39세 16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난망(難望)’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나아진다는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열정, 행복, 발전, 연대 등의 낱말을 제시했으나 “탈(脫)한국이 답”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미래를 내다본 창(窓)이라기보다는 현실을 드러내고 반영한 것”이라고 박성원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미래학)는 설명했다.

2030세대는 향후 30년의 모습을 ‘지속 쇠퇴(continuous decline)’로 인식했다. 광복 이후 ‘지속 성장’의 반대 현상을 예견한 것. 배가 침몰하는데, 아군(我軍)은 없다. 성장 둔화, 격차 확대 대안도 딱히 없다. 도움 줄 정치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자도생해야 한다.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는 게 해법이다. ‘생존사회’다.

지속 쇠퇴 vs 제2의 도약

설문조사 결과대로라면 2030세대는 미래를 설계할 여력조차 없는 자포자기, 체념의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을 떠날 기회를 엿본다. 공평하지 않으며, 일자리 걱정이 상존하고, 빈부격차가 심한 생존사회에서 살아남고자 각자 투쟁하는 상황에서 미래 예측이 긍정적이긴 어렵다.

30년 후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할까. 미래에도 국내총생산(GDP), 1인당 국민소득이 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유용할까. 2045년에도 주거 형태를 자가, 전세, 월세로 구분할까.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낱말이 존재할까. 인공지능 기술이 단번에 도약하거나 트랜스휴먼(인간의 뇌와 인터넷의 결합)이 나타나 ‘상상, 그 이상의 미래’가 열려 있으리라는 전망은 섣부를까.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는 “30년 후? 가슴이 무너질 듯 벅차다. 먹먹하다. 도저히 떠올리지 못하겠다. 30년 전, 현재의 모습을 상상조차 못했다. 30년 후엔 현재 지지받는 가치가 모두 해체됐을 것 같다”고 했다.

현실로 되돌아와 2030세대 다수가 공감한 ‘지속 쇠퇴’의 예감을 뒤집어 읽으면 그것이 2030세대가 희망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이다. 일자리가 넉넉하고,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으며,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무한경쟁보다는 화합과 협업이 강조되는 사회다.

어려울 난(難) ①“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②“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어야 돼”(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중 여주인공 ‘계나’의 독백).

①, ②의 독백을 거꾸로 읽으면 한국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금수저’는 못 돼도 ‘은수저’는 물고 태어나야 한다. 아니면 명문대라도 나오거나 김태희처럼 예뻐야 한다(문학평론가 허희 ‘사육장 너머로’ 참조). 호주로 이민 간 ‘계나’도 ‘지잡대’를 나왔다고 쑥스럽게 웃는 ‘재인’에게 “난 홍대 나왔는데”라고 말하며 통쾌함을 느낀다. ‘서열 사회’에서 학벌은 사회 계급의 하나로 기능한다. 서열은 더욱 세분화한다.

기승전(起承轉)치킨집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을 받으면서 ‘명문대 진학 외길’을 걸은 20대의 현실 인식은 소설 속 ‘계나’보다 더 부정적이다. 온라인에서 촌철살인(寸鐵殺人) 대접을 받는 ‘기승전치킨집’은 이렇다. 이과의 자연계열은 대학→백수→아사(餓死)하거나 대학원→연구원→치킨집이다. 공학계열은 대학(+대학원)→기업→치킨집(혹은 과로사). 경상계열은 기업→치킨집(혹은 창업→치킨집)이다. 인문계열은 치킨집도 버겁다. 아사하거나 백수로 연명한다. 명문대를 나와도 ‘금수저’가 아니면 종착지는 같다는 것이다.

희망할 망(望) 골드만삭스는 2050년 한국의 1인당 GDP가 8만 달러를 넘어 미국 다음의 세계 2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5년 경제력이 G7 수준에 이르고 2050년에는 세계에서 잘살기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광복 후 한국은 세계 역사에 남을 만한 눈부신 ‘지속 상승’을 이뤄냈다. 빈국에서 부국으로 대약진했으며, 변방에서 만방으로 나아갔다. 1980년대 불의를 규탄하면서 공산주의 혁명을 도모한 ‘강철서신’ 저자 김영환 씨의 견해는 이렇다.

“한국은 광복 이후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경제적 발전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다. 경제 발전의 측면을 보자면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환산한 1인당 GDP(2014년 기준 3만4357달러)는 일본, 영국,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을 달성했다. 명목 GDP로 봐도 다른 선진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구매력평가(PPP·Purchasing-Power Parity) 기준 GDP는 각국 통화단위로 산출한 GDP를 단순히 달러로 환산하지 않고 각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해 비교한 것이다. 발전경제학은 경제력을 비교할 때 명목 GDP가 아닌 PPP 기준 GDP를 사용한다. PPP 기준으로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도착적 근대화

어려울 난(難) 선진국은 경제성장 속도가 정체되게 마련이다. 대학만 졸업하면 골라서 기업에 들어가던 ‘급성장 시기’는 아련한 과거다. 압축성장이 남긴 부작용의 그늘은 짙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도착적(倒錯的) 근대화’가 전개되면서 악성 변종의 국가공동화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동양의 혈연연대와 서양의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만나 ‘자유로운 개인의 가족 같은 연대로 이뤄진 합리적·다원적 사회공동체’가 구축된 게 아니라 혈연왕국, 재벌왕조, 이념왕국으로 도착돼 변질했다. 지연·학연·부와 권력의 혼맥으로 이뤄진 ‘한국 새 귀족’의 군자(君子)다움 결여가 갈등을 증폭한다. 지식인, 언론인, 문화예술인이 재벌-권력을 잇는 금권정치 주변을 배회한다. 인간, 사회공동체, 국가가 한갓 혈족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이용·활용·착취·탈취의 대상이 됐다. 한강의 기적에만 매몰된 경제 제일주의, 운동권적 시각으로만 사안을 들여다보는 민주화 제일주의, 재벌중심주의, 혈족이기주의가 계속되면 자율적·합리적 사회공동체는커녕 법과 국가도 존재할 여지가 없다.”

근대화로 겉은 번지르르해졌으나 악성의 도착이 일어나 속은 곪을 대로 곪았다는 것이다. 김영환 씨의 견해도 비슷하다.

“정신문명이 다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는지 의문이다. 한국 사회는 국민의식, 정신문명 측면에서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

2030세대는 ‘국익 확대’ ‘수출 증대’ ‘국력 총화’ ‘애국’ 등의 낱말이 ‘나의 행복’과는 무관하다고 여긴다. 국가 경제의 총량 확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나운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는 게 시급하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는 수사(修辭)나 ‘선진화=GDP 상승’으로 여기는 산업화 시대의 마인드가 먹히지 않는다. GDP 높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운” ‘계나’가 눈치 없이 따지는 것은 이런 거다.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살아남기 급급한 2030세대에게 자아실현은 사치다.

‘애국’에 대한 감정 표출은 다중적이다. ‘선진국 진입’ ‘국격 상승’ 같은 것을 강조하면 ‘미친’ ‘국뽕 맞았냐’는 답을 듣기도 한다. 국뽕은 국가+히로뽕의 합성어. 국가에 자긍심을 가졌거나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젊은 메이저리그 팬들은 추신수, 강정호가 뛰는 텍사스 레인저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팀세탁(응원팀을 바꾸는 것)’한 이들을 “국뽕 맞은 놈들”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반면 애국주의와 배타주의 차별주의 배외주의가 결합돼 파시즘으로 흐른 ‘일베 현상’도 있다. ‘전두환=전땅크’로 찬양하는 악성 변종의 애국주의 혹은 국가주의도 나타난 것이다.

사자 앞 톰슨가젤


희망할 망(望)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는 대한민국 정치에 매우 부정적(43.3%)이거나 부정적(43.2%)이었다. ‘긍정적(1.7%)’ ‘매우 긍정적(0.3)’이라는 응답은 극소수다. 정치가 개과천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정치를 통한 점진적 변화가 난망한 상황에서 사회구조를 바꾸는 방법으로 혁명과 전쟁을 꼽을 수 있다. 호전광(好戰狂)이 아니라면 북한과 통일전쟁을 치러 활로를 뚫자는 식의 인식을 가진 이는 없을 것이다. 혁명이 필요하다거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혁명에 대한 ‘계나’의 생각은 이렇다.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혁명을 꿈꾸어야 할 이유’)에 이렇게 썼다.

“여의도 정가의 부질없는 싸움,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나. 이제 역모가 될까 두려워 못 나서는 세상도 아니다. 시민의 세력화, 이를 통한 거버넌스 구조의 개혁,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정책의제의 변화, 이런 혁명을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보통신 기술이 낳은 네트워크를 이용해 시민이 거버넌스 구조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은 혁명에 비견되는 일대 사건이다. 2030세대가 ‘절망의 구조’라고 여기는 현실을 타파할 기회다. 이태호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한강의 기적에 대동강의 기적을 이어 붙여 우리의 역량을 만방에 알리자. 도로 항만 공항 등 인프라, 공단 건설, 광물자원 개발 등 개성에서 나진, 선봉까지 젊은이들이 할 일이 널려 있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골드만삭스 예측의 전제가 한반도 통일이다. 투자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골드만삭스의 예측은 ‘장밋빛 전망’일 뿐이라 하더라도 “광복 100년, 통일된 동아시아의 번영한 평화 지향 국가이면서 통상 물류의 중심국”(윤영관 서울대 교수)이 되는 것은 난망한 일이 아니다.

‘퀀텀 점프’의 성장통


어려울 난(難) 진영갈등, 지역갈등에 덧붙여 세대갈등도 나타났다. SNS에서 ‘9·22 대란’으로 일컬어진 한 언론사 논설위원의 칼럼(‘늙는 게 罰(벌)은 아니다’)이 격한 논란을 일으켰다.

“실력이 있으면 사법시험도 붙고 은행도 들어갔지만 그게 안 되면 벽돌도 나르고 리어카도 끌었다. 분수에 맞게 벌고 살림을 차려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 드려야 되는 줄 알았다. 너희는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알더라만 나는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 징징대지 마라. 죽을 만큼 아프다면서 밥만 잘 먹더라. 나는 지금도 너희 세대보다 무거운 것을 들고 너희보다 오래 뛸 수 있다. 밤샘 일도 너희보다 자신 있다.”

이 칼럼은 SNS에서 빛의 속도로 퍼졌다. 2030세대는 ‘극혐’ ‘꼰대’ ‘극악’ 등의 꼬리말을 붙이면서 퍼 날랐다. 다음과 같은 패러디도 쏟아졌다.

“님은 없어도 열심히 일해서 살림도 차리고 손주도 안겨드릴 수 있는 세상에 살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님은 열심히 살면 뭔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살았지만 우리 앞에는 절망뿐입니다. 님은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아는데, 연애·결혼·출산을 그냥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우리는 포기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말장난하지 마세요. 그러고 보면 님 같은 사람에게 배우는 건 말장난뿐입니다.”(미디어스, ‘님처럼 늙는 것은 죄입니다’ 제하 칼럼)

‘늙는 게 罰은 아니다’ 칼럼에 대한 중장년층의 인식은 대체로 ‘공감한다’ ‘내 생각이 이와 같다’였다. 2030세대와 5060세대는 이렇듯 ‘다른 세상’을 산다.

희망할 망(望) 한국 사회의 갈등은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이뤄낸 데서 기인한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바라는 미래가, 올 것 같은 미래로 믿어지는 경우”(박성원 박사)다. 2030세대가 꿈꾸는 미래상은 무엇일까. 그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을까.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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