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2심에선 케이웨더에 승소… 4년 이어진 ‘라이다 분쟁’ 새 국면
기상청 “저가장비 납품 폭리 취해”, 케이웨더 측 “상고”… 대법서 결판
48억 원대 기상장비 라이다(LIDAR) 도입을 놓고 기상청이 민간업체와 벌여온 소송 항소심에서 30일 승소했다. 5년 가까이 이어져온 이 사건은 “기상청의 운명이 걸렸다”고 할 정도로 기상업계 초미의 관심사가 돼 왔던 사안이다. 기상청이 패소했던 1심을 뒤집고 극적으로 승소함으로써 기상 당국과 관련 업계 모두 재편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 진흙탕 싸움 끝에 얻은 승리
서울고법 민사1부는 이날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가 기상청 산하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을 상대로 낸 라이다의 물품대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진흥원의 1심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며 “케이웨더는 (1심의 일부 승소 판결에 따라 지급받았던 장비 설치비용) 11억9600만 원을 진흥원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라이다는 공항 활주로에서 갑자기 부는 돌풍(윈드시어)을 탐지해 비행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돕는 장비다. 사건의 쟁점은 케이웨더가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온 이 프랑스산 라이다 장비 2대가 진흥원이 요구한 조건과 성능을 갖췄는지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입찰 당시 제출받았던 제품정보와 달리 장비가 너무 부실해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는 기상청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장비가 3차례 검수·검사 과정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던 것에 대해서도 “진흥원 담당 직원의 잘못이었다”는 기상청의 설명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양측이 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까지 거치면서 맞붙은 치열한 법정싸움 끝에 나온 것.
사건은 기상청이 조달청을 통해 라이다 장비를 경쟁입찰에 부친 201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비는 측정거리 10km 이상, 스캔속도 초당 20도 이상을 갖춰야 한다’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경쟁사보다 낮은 값으로 입찰을 따낸 케이웨더는 프랑스 레오스피어사의 제품을 들여와 제주와 인천공항에 설치했다.
그러나 잇단 검수·검사 과정에서 이 장비는 수시로 오작동을 일으켰고 264개 예비검사 항목에서는 127∼140개가 ‘부적합’ 또는 ‘점검 불가’ 판정을 받았다. 케이웨더가 프랑스 본사와 이면계약을 맺고 20억 원을 따로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기상청이 인수를 거부하면서 사건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투서와 고발이 난무하는 가운데 직권남용과 입찰방해, 사기, 미수, 뇌물 등 무려 14가지 혐의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졌다.
○ “부도덕한 업체의 폭리에 엄중히 대처할 것”
소송 과정에서 인맥과 학맥으로 얽힌 기상업계의 유착관계와 기상청 내부의 파벌 싸움 등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나 ‘라이다 사건’은 기상청의 존립까지 흔드는 메가톤급 사건으로 확대됐다. 더구나 케이웨더 측은 “국가기관이 민간업자 죽이기에 나섰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업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케이웨더와의 갈등은 윈드프로파일러를 비롯한 다른 기상장비의 유지 보수 업무에도 심각한 차질을 불러왔다. 시장 규모가 작고 기술력도 떨어지는 기상업계에서 대안을 찾지 못한 기상청은 “민간업자에게 끌려다닌다”는 여론의 질타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기상청은 사활을 걸고 매달려온 이날 판결이 나오자 “앞으로는 국가를 상대로 부도덕한 업체가 폭리를 취하기 위해 저가의 장비를 무리하게 납품하려는 행위에 엄중히 대처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납품 관련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케이웨더 측은 “판결 취지를 검토한 뒤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혀 ‘3라운드’ 결전이 남아 있는 상태. 그러나 기상청은 남은 소송과는 별개로 기존에 남아있던 케이웨더 측과의 계약관계를 순차적으로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상청 관계자는 “판결 때까지 기상청의 다른 프로젝트들을 모두 미뤄놓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조직을 추스르고 다시 업무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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