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인천 중구 배다리4거리 도로 바닥에 동구청과 남구청 방향이 각각 표시돼 있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인천의 기초자치단체인 중구와 동구, 남구, 서구는 현재 남동구 정각로에 있는 인천시청이 과거 중구에 있을 때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시청을 중심으로 방위 개념에 따라 단순하게 명칭을 붙인 것이다. 1985년 시청이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실제 방위와 맞지 않게 됐을뿐더러 해당 지자체의 역사나 정체성도 전혀 담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행정구역 명칭이 갖는 역사나 문화적 의미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름을 붙인 결과다.
인천시가 최근 이들 지자체의 이름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열린 ‘군수·구청장 정례회의’에서 인천의 정체성 찾기 사업의 하나로 인천발전연구원이 진행하는 행정구역 명칭 변경 연구용역 결과를 설명했다. 다음 달까지 해당 구의 의견을 수렴한다.
인천발전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이 4개 지자체 주민의 절반이 넘는 69%가 구 명칭이 부적합하다고 답변했다. 반면 명칭에 지역적 특성이 포함된 연수구와 부평구 계양구 강화군 옹진군에서는 ‘적합하다’는 의견이 74%로 나타났다. 남동구만 부적합(46.5%)과 적합(보통 포함·53.5%)이 비슷했다.
중구 주민들은 행정구역 명칭을 바꿀 경우 1883년 인천항(당시 제물포항)이 문을 열며 서구의 문물이 유입된 점을 들어 제물포구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구는 조선 말기인 1879년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세운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군사기지인 화도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화도구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았다. 과거 수도국산 인근에 소나무가 많이 식재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송림구나 송현구도 후보로 올라왔다.
남구는 기원전 18년 고구려 주몽의 아들 비류가 미추홀 왕국을 개국한 지역으로, 백제 초기에 축조된 문학산성이 남아 있어 미추홀구나 문학구로 변경하자는 요구가 많았다. 이 밖에 서구는 가장 많은 주민이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을 따 연희구나 검단구 서곶구, 남동구는 구월구나 논현구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았다.
인천시는 인천발전연구원의 용역결과를 토대로 다음 달까지 군·구의 실태조사, 기본계획, 기초의회 의견 수렴을 마칠 예정인데,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행정자치부 행정구역 실무편람에 따르면 해당 지자체 거주 가구의 절반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또 지방의회 의견 청취, 법률안 작성, 행자부 승인,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승인 등 행정절차가 복잡하다.
이와 함께 도로와 거리에 설치된 공공기관 간판과 기존 공문서 표기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에 지역별로 수십억 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과거에 행정구역 명칭을 붙일 때 행정편의적 발상에 따라 중구난방식으로 이름을 붙여 빚어진 현상이다. 행정구역 명칭 개정은 인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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