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꽂히는 단어로 1분 안에 다 말하라

  • 신동아
  • 입력 2015년 11월 6일 14시 20분


[신동아 11월호/생활정치의 달인]
스피치의 정치학
대학에선 토론과 발표 수업이 많다. 입사시험에선 면접 비중이 높다. 직장에서 회의 때 침묵하면 과묵함이 아닌 무능함으로 비친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야 일거리를 얻는다. 정치인도 공천심사위원들 앞에서 말을 잘해야 낙점된다. TV와 인터넷에서도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소통이 경쟁력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로 스타 정치인이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로 스타 정치인이 됐다.

평생 면접을 보는 시대다. 과거엔 면접이 입사 면접 한 번으로 끝났다. 이제는 대학에 들어가려 해도 여러 번 면접을 거쳐야 한다. 입사 면접은 수십 번 감내해야 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다보니 이직 면접, 재취업 면접도 흔하다.

‘평생 면접’ 시대

난도 또한 날로 높아진다. 옛날처럼 ‘아버지 뭐 하시노?’ 묻던 수준이 아니다. 올해 삼성그룹은 창의성 면접을 도입하기로 했다. 면접에서조차 창의성을 요구한다. 까다로워지는 면접에 더해 자기소개서 중요도도 높아진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학 입시에서 자기소개서 비중이 높아진 데 이어, 이제 입사시험에서도 자기소개서를 잘 써야 한다. 면접과 자기소개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잘 쓰고 또 잘 말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소개=자기 홍보


자기소개서는 가끔 써도 자기소개는 훨씬 자주 해야 한다. 모든 스피치는 화자인 자신을 알리는 데서 출발한다. 비공식 모임에서는 물론 공식 모임에서도 자기소개는 기본이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소개할까. 자주 해야 하는 일이지만 잘 못하는 일이 자기소개다. 많은 사람은 “○○○○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입니다”라는 식으로 직장과 직책을 소개한다. 그런 애사심은 감동적이지 않다. 천편일률적이란 생각도 든다.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회사에서 맡은 일이 본인의 정체성이란 말인가.

자기소개는 자기 홍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매력덩어리다’ ‘나와 친하지 않으면 손해다’ ‘나를 택하지 않으면 후회한다’ 같은 인상을 줘야 한다. 자기 홍보를 잘하는 사람은 회사 홍보도 상품 홍보도 잘한다.

1분 스피치


요즘 기업 면접에서도, 정당의 공천심사에서도 유행하는 게 ‘1분 스피치’다. 1분 동안에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왜 적임자인지 말해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1분 스피치를 제대로 못해 후회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늘어놓는 푸념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TV에서 ‘1분 뒤 계속됩니다’라는 코멘트와 함께 광고가 나온다. 이때 1분이 길게 느껴지는가, 짧게 느껴지는가. 대통령 후보 TV토론 때 사회자의 질문 당 후보자의 답변 시간은 1분 30초다. 그 시간이 충분하게 느껴지는가, 불충분하게 느껴지는가. 1분은 꽤 긴 시간이다. 1분 동안 제대로 말 못하는 사람에겐 2분을 줘도 마찬가지다.

내용 안 겹치는 500자


1분을 글자 수로 환산하면 대략 500자 내외다. 물론 사람에 따라 말하는 속도가 다르기에 딱 잘라 몇 자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자신이 1분 동안 말하는 분량을 가늠할 수 있다. 평균 500자라고 보면 1분이 왜 짧지 않은지 알 수 있다.

막상 뭔가를 쓸 때 500자를 채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주제로 내용이 겹치지 않게, 사족 없이, 500자를 써보라. 그 안에 핵심 내용을 모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500자는 단신 기사의 평균 분량이다. 1분, 특히 첫 1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7월 26일 미국 뉴욕 한국총영사관의 청년드림뉴욕캠프에서 전문가들이 참가자들에게 말하기 기술을 조언하고 있다.
7월 26일 미국 뉴욕 한국총영사관의 청년드림뉴욕캠프에서 전문가들이 참가자들에게 말하기 기술을 조언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는 습관

코스 요리를 좋아하는가, 단품 요리를 좋아하는가. 시간이 충분하다면 한정식 풀코스가 좋다. 시간이 촉박할 땐 김밥이 더 낫다. 논문은 서론에서 본론을 거쳐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할 시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듣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오랫동안 들어주지 않는다. 따라서 결론부터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떤 발언을 할 때 결론부터 말하고 설명을 붙이는 게 더 낫다. 장점이나 특성에 대한 설명은 3가지 정도가 적당하다. 설명할 내용이 너무 많아 5가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으면 각인효과가 떨어진다. 대표적 장점이나 특성 중심으로 요약해야 전달력이 높다.

서설이 너무 길어


반대로 결론을 뒤로 미루면서 말하면 듣는 사람은 십중팔구 ‘서설이 너무 길어.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뭐야?’라며 불편해한다. 잘 설득될 리 없으니 스피치는 실패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근거 사례를 제시하라


근거가 되는 사례를 드는 것도 중요하다. “저는 성실합니다”라고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성실하게 일한 과거의 경험적 사례를 말하는 것이 더 낫다. 사례도 3가지쯤 들어주는 게 좋다. 이것도 너무 많으면 역효과가 난다. 3가지로 요약하는 것은 매킨지 컨설팅의 MECE(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 중복도 누락도 없음) 기법에서도 선호하는 방식이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런 전개 방식은 글쓰기에서도 활용된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자기소개서를 잘 쓰면 그걸 토대로 1분 스피치를 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눈에 덜컥 걸리는 단어


키워드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1분 스피치에 들어가는 500개 안팎의 단어 중 귀에 단박에 꽂히는 단어가 한두 개는 있어야 한다. 이게 키워드다. 이 키워드는 자신이 주장하려는 핵심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더 호감을 갖게 된다.

우리의 눈과 귀는 매일 키워드 탐색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할 때 어떤 기사를 주로 클릭하는가. 아마 키워드가 눈에 ‘덜컥’ 걸리는 기사일 것이다. 당연히 언론사의 데스크와 기자는 기사 제목에 특별한 단어를 넣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말을 할 때 키워드에 각별히 신경 쓰는 게 좋다. 각인효과를 높이는 차원에서 낯선 신조어 또는 유행어 사용도 불사해야 한다. 먼저 키워드를 구상하고 그것에 설명을 덧붙여나가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키워드를 골격 삼아 내외장재로 치장해가는 격이다.

20분 프레젠테이션 전략

요즘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때도 많다. 수주에 참여할 때는 물론이고 회사 내에서도 프레젠테이션은 기본이다. 이처럼 일상화한 프레젠테이션에서도 ‘결론부터 말하기’ 원칙은 매우 유용하다. 템플릿 1개당 1분을 쓰고, 템플릿 상단에 결론부터 제시하고, 그 아래엔 그림 또는 도표를 곁들여 근거들을 대는 식이다. 템플릿 20장이면 발표 시간은 20분으로 딱 떨어진다. 20분은 뇌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시한이기도 하다. 20분을 넘어가면 어떤 사람도 졸게 마련이다.

5분 단위로 졸음 깨워라


20분이 넘을 경우 티타임을 갖거나 잠이 달아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다. 발표자가 위치를 이동하거나 돌발적 행동을 하거나 청중으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하는 것도 유효하다. 20분 발표 중에도 5분 간격으로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1분 스피치를 모으면 연설이 된다.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문이 그렇다. 2015년 4월 임시국회 때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의 연설은 1만7000자 분량이었다. 500으로 나누면 34분 동안 말할 분량이다. 연설의 결론은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를 하자’였다. 11개의 장으로 이뤄졌는데, 1개의 장은 1분 스피치 3개가 들어가는 분량이다.

면접, 일생일대의 순간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곳의 대표로 나서려면 연설을 해야 한다. 회사에서도 고위직에 오르면 연설할 기회가 늘어난다. 학교나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연설의 일종이다. 가장 중요한 말하기 순간은 면접일 것이다. 면접의 경우 듣는 사람은 소수지만 이들의 결정에 따라 화자의 운명이 달라진다. 면접에서 말하는 것은 수많은 청중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면접에선 1분 스피치하듯 말해야 한다. 질문하는 사람이 답변 시간을 적게 주는 것 같으면 30초 안에 다 말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해야 하고, 사족을 뺀 핵심만 제시해야 하고, 근거를 대야 하고, 귀에 꽂히는 단어를 언급해야 한다.

TV 출연해 말하기

요즘 시대엔 TV나 라디오에 출연해 말하는 것이 청중 연설을 대체한다. 어떤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치자. 자신이 말하는 순간에 시청률이 2%라면 적어도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지켜보는 셈이다. 채널이 늘고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서 일반인도 곧잘 방송에 출연해 말을 한다. 직장인이 회사 업무로 방송 인터뷰에 응하기도 한다. 필자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해봤고 종편 등 TV에 출연해 현안에 대해 논평하기도 한다.

카메라 울렁증


누구나 TV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린다. 해야 할 말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고개를 숙인 채 써온 것을 보고 읽는다. 아니면 횡설수설하다 끝낸다. 이른바 ‘카메라 울렁증’이다. 공인의 영역으로 자신을 한 단계 높이려면 카메라 울렁증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 펼쳐진다.

보고 읽지 말라


필자는 ‘보고 읽는 것만큼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면접장에서 써온 것을 보면서 대답하면 무조건 낙방이다.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TV도 다르지 않다. 보고 읽으면 시청자는 조용히 채널을 돌린다.

핵심 단어만 기억하기

1분 스피치 요령을 염두에 두면, 보고 읽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출근길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사회자가 출연자에게 질문을 던져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질문당 답변 분량은 1분~1분 30초다. 이보다 길어지면 청취자는 지루함을 느낀다. 어떻게 답변해야 하나. 당연히 핵심만 이야기해야 한다. 반드시 언급해야 할 단어와 표현이 있다. 그것만 기억해두면 된다. 그리고 거기에다 살만 조금 붙여 말하면 된다.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내용이 알차게 말할 수 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출연자가 말하는 내용을 소리 내 따라 말하는 것은 좋은 연습 방법이다.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전문가는 방송사에서 검증을 마친, 그 나름대로 방송의 달인이다.

감정을 유발하라

전달력을 높이려면 때로는 감정을 유발해야 한다. 무덤덤하게 말하는 것보다는 따스함, 동정, 슬픔, 유머, 분노 같은 감정을 유발하는 편이 확실히 각인효과가 높다. 연애할 때 최대의 적은 상대방의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본인이 우는 건 금물


그러나 슬픔을 유도하되 본인이 먼저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 위트와 유머를 가미하되 본인이 먼저 웃음을 터뜨려선 곤란하다. 화자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오직 말의 내용으로써 청중을 울리고 웃겨야 하는 법이다. 이는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눈물이나 웃음을 보이면 비난에 휩싸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인이 말하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지켜본다. 미국 대통령도 가끔 TV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참모들은 ‘인간적 모습’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나 십중팔구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청중의 측은지심에라도 호소해보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정치인의 눈물에 대해 우리 국민은 점점 더 냉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다. 몇 번 겪어봐서 이젠 왜 우는지 아는 것이다. 잘못 울었다간 역효과만 낸다.

‘말주변’은 노력의 결과

우리는 ‘제가 원래 말주변이 없어서…’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겸손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이렇게 던져놓고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 중 상당수도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러면 출마하지 마세요’라는 것이 필자의 조언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주변은 후천적 노력으로 개선된다. 어릴 때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이 없진 않다. 뇌의 언어 영역이 선천적으로 발달한 사람이다. 그러나 말을 잘하는 사람 대부분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한 이들이다. 선천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준비하거나 연습하지 않으면 프레젠테이션이나 연설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성격은 필요의 산물

‘본래 내성적이라서’ ‘앞에 잘 나서는 편이 아니라서’ 같은 말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사회생활을 포기할 요량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 수 있을까. 외향적 성격에 잘 어울리는 직업으로 알려진 영업직 중에는 의외로 본래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적지 않다. 25년 동안 130여 국가 300여 도시를 다녔고 ‘나는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았다’라는 책을 쓴 전권열 씨는 “입대 전만 해도 대단히 내성적이었지만 일을 하다보니 적극적으로 바뀌더라”고 말한다.

발명은 필요의 산물이라는 말이 있는데, 성격이야말로 필요의 산물이다. 본래 말주변이 없다거나 성격이 내성적이라거나 잘 나서는 편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내가 절실해야 내 말에도 힘이 실린다.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말하기#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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