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에선 잊을 만하면 ‘사재기’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논란이 불거진다. 편법을 써서라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판매 실적이 올라간다는 확신 때문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국내 독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건 광고보다 ‘베스트셀러’ 타이틀이다.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이 더 많이 팔리는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한국사회에서 유독 ‘남들 따라하기’와 쏠림현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타인의 취향과 욕망을 모방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TV 광고에서 김수현이 쓰는 밥솥과 전지현이 마시는 맥주를 보여주며 대중의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같은 인간 욕망의 구조를 ‘욕망의 삼각형’ 이론으로 체계화한 프랑스 사상가가 4일 미국서 별세한 르네 지라르(1923∼2015)다.
▷지라르는 문학, 철학, 종교학 등을 두루 통섭한 인간 탐구의 업적을 남겨 ‘인문학의 다윈’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에서 반세기 넘게 살았음에도 2005년 ‘불멸의 40인’으로 불리며 국민에게 존경받는 프랑스 아카데미프랑세즈의 정회원이 됐다. 그는 소설 분석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실은 남의 욕망을 베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컨대 ‘보바리 부인’에서 상류사회를 동경하는 에마의 욕망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단지 사춘기 때 읽은 삼류 소설 주인공의 욕망을 빌려온 것으로 나, 욕망의 대상, 타자(他者)가 삼각형을 이룬다.
▷부모가 내 자식의 적성에 관계없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도 ‘모방 욕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욕망의 삼각형이 무서운 이유는 내가 남의 욕망을 모방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라르에 따르면 인류는 경쟁적으로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다 쌓인 질투, 적개심 같은 집단적 스트레스를 엉뚱한 희생양을 찾아내 해소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남의 욕망을 엿보는 게 일상이 됐다. 유행가 가사에 나오듯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