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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주제는 ‘공공 에티켓’]<213>지나친 길거리 애정표현
지난달 20일 오후 8시경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한 주택가. 퇴근 후 방에서 TV를 보던 직장인 박모 씨(27)는 창문 밖에서 나는 여성의 낮은 신음소리를 들었다. 밖은 막다른 골목. ‘혹시 성범죄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급히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눈앞에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추는 젊은 커플이 있었다. 두 사람의 웃옷은 아슬아슬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박 씨는 “대학생처럼 보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더니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며 “큰길도 가까이 있는데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가 넘은 ‘길거리 애정행각’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학교는 물론이고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에서 민망한 스킨십 장면을 봤다는 목격담이 쏟아진다. 동영상 사이트에는 이런 장면을 찍은 영상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6일 오후 7시경 취재팀이 찾은 서울 종로구 일대 버스정류장에서는 우산 밑에서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진한 입맞춤은 물론이고 과감하게 스킨십까지 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직장인 박슬기 씨(29·여)는 “가벼운 키스로 배웅하는 모습은 ‘예쁘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 이상이면 불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나 놀이터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모 씨(28)는 “한강공원에서 부모님과 함께 산책하다 커플들의 과도한 애정행각을 보고 서둘러 집에 돌아온 적이 많다”며 “여름에는 아예 텐트 안에서 껴안고 있는 커플이 많아 시선 둘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눈치 보지 않고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 더 멋있는 연애라고 착각하는 젊은 커플도 많아졌다”며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어른들이 길거리 애정행각을 지적하면 오히려 ‘지나친 간섭’이라며 욕을 먹게 된다”고 말했다.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애정행각은 법적으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형법상 공연음란죄는 공공장소에서의 성기 노출이나 성행위 등에만 적용된다. 결국 당사자들이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 스스로 애정표현의 선을 지켜야 한다.
결혼을 20여 일 앞둔 권모 씨(31)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진한 스킨십을 하고 그 사진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버젓이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며 “내가 이런 ‘민폐 커플’이 되지 않으려고 공공장소에선 애정표현을 자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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