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6만8000여 명(경찰 추산)이 시위를 벌였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였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내재된 불만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방증인 듯하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팍팍한 삶이 수년째 이어지고 ‘내일의 희망’을 품기에는 당장의 처지가 급박하다.
정작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정치력을 보여줘야 할 국회는 민심과 동떨어진 채 정쟁에 빠져 있다. 비전과 해법을 제시하고 통 큰 리더십으로 국민의 피곤함을 어루만져야 할 청와대는 국민과의 소통을 포기한 채 자기 고집만 피우는 형국이다. 이날 시위에 나선 성난 군중은 답답한 대한민국을 향해 “똑바로 좀 하라”고 외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시위대와의 공감은 딱 여기까지였다.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넘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순간 그들에 대한 이해와 동조하는 마음은 체념과 함께 싸늘한 시선으로 돌변했다. “분노하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상균 위원장의 구호는 마치 ‘돌격 지시’ 같았다. 시위대는 기다렸다는 듯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공권력을 대놓고 공격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일부 시위대는 횃불을 들고 보도블록까지 깨 던지며 폭력의 수위를 높여갔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액으로 시위대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68세 시위자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민노총 등 집회 주최 측은 좋은 건수라도 잡은 마냥 궤변과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합법적인 집회를 막았으니 시위대의 폭력 행사는 불가피했고 경찰의 과잉 진압이 사고를 초래했다”며 다음 달 또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물대포 사용 규칙을 지켰는지 따져 묻는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엄연히 정해진 장소에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진행한다고 해놓고선 청와대로 가겠다며 ‘선’을 넘어 쇠파이프를 휘두른 집회 주최 측이 촉발했다. 시위 때마다 불법행위를 일삼는 민노총 등 주최 측이야 그렇다 해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까지 나서 “정부의 폭압적 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폭력시위를 두둔하는 모양새다. 국민 안전을 지키던 경찰관 수십 명이 쇠파이프에 다치고 국가 재산인 경찰버스 50여 대가 부서진 사실은 듣지 못했나 보다.
이날 행사가 끝나고 행사를 조직한 지도부들은 매캐한 최루액과 쓰레기로 아수라장이 된 세종대로를 쳐다보며 축배의 소주잔을 기울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의를 가장한 도로 위 폭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변혁의 열쇠는 폭력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표)라는 사실 정도는 초등학생도 다 안다.
시민사회단체가 이번 폭력시위로 하루짜리 속 시원한 분풀이는 했을지 몰라도 일반 시민의 지지를 얻는 데는 또 실패했다. 그들의 거듭된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범야권을 향해 쌓여가는 국민적 불신이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집권 여당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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