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계종 “한상균, 12월 초까지는 나가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03시 00분


[광화문 폭력시위 수사]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 배치된 경찰이 17일 한 위원장의 도주를 막기 위한 경계 활동을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 배치된 경찰이 17일 한 위원장의 도주를 막기 위한 경계 활동을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조계종 측이 16일 오후 조계사로 잠입한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53)의 장기 체류 요청을 거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 측은 한 위원장의 ‘퇴거’ 시한을 12월 초로 정하고 이르면 18일 이런 방침을 한 위원장에게 통보할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경찰과 조계종 관계자에 따르면 18일 오전 조계사 부주지 원명 스님과 이세용 종무실장이 한 위원장 등을 면담할 예정이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당분간 머물 수는 있지만 계속 있는 것은 곤란하며 12월 초까지는 나가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측의 이런 의견은 한 위원장 은신에 대한 내부 반대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17일 오전 열린 조계종 대책회의에서는 “명백한 불법과 폭력을 일삼은 이들을 보호해야 하느냐” “그래도 종교 시설에서 품어야 한다” 등 상반된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과거와 달리 “(은신자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전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조계사는 2000년 명동성당이 ‘성당의 동의 없는 집회를 불허한다’고 선언한 이후 각종 시국사건 수배자들의 은신처로 떠올랐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도 당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조계사에 은신했다. 가깝게는 2013년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수배를 피해 조계사에 은신했을 때와도 사뭇 다르다. 당시 조계종은 “산사에 찾아온 짐승도 쫓지 않고 먹이를 주는 게 불교정신”이라며 철도노조와 사측의 중재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과거와 달리 조계종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는 민주노총이 조계사로 상징되는 한국 불교의 총본산을 정치투쟁의 거점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한 위원장의 은신을 철도노조 파업 때와 같은 차원에서 보기 어렵다는 게 조계종의 시각이다. 종단의 한 관계자는 “철도노조 때는 사측이 대화를 거부한 데다 먼저 종단의 사회적 기구인 화쟁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이번 사안은 다르다”며 “불법 폭력시위를 향한 비판적 여론이 거센 데다 노골적으로 반(反)정부 구호를 앞세우고 있어 중재할 사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기습적으로 조계사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조계종 측의 승인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16일 오후 9시 30분경 측근 1명과 조계사를 찾았다. 경비원에게 신분을 밝히고 자승 총무원장 면담과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총무원 측이 고심하는 사이 조계종 노동위원회 소속 직원은 평소 템플스테이 장소로 활용하는 ‘관음전’ 4층 방을 내줬다.

한 위원장은 “박근혜(대통령) 심장 밑에 은신해 처절한 노동운동을 준비하겠다”고 말하며 관계자들에게 감사 표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조계사로 피신할 것이면 경내 소란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해 달라고 민주노총 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계종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당초 종단은 한 위원장의 피신을 거부할 방침이었다”며 “노동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은신처를 내줘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신도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한 신도는 “특정 집단이 종교시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종단 차원에서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17일 오전 불교종단협의회 차원의 성지 순례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출국했다. 출국 전 한 위원장의 조계사 은신을 보고받았지만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4일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 집회 현장에서 한 위원장 검거에 실패한 경찰은 이후에도 그의 동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17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은 “한 위원장이 당시 1000여 명의 호위대에 둘러싸여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건물로 도주한 이후 행적을 놓쳤다”며 “검거를 시도할 경우 대규모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체포조만 구성하고 검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간첩 작전 하듯 움직이는데 도청할 수 없고 통신 수사도 못해 조계사로 들어간 이후에야 관련 사실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17일 “한 위원장 중심으로 민중연대를 다져 노동현장 투쟁 태세를 가다듬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종교 시설이 시국 사건 수배자들의 공공연한 도피처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조계종 측이 한 위원장에게 퇴거 요청을 할 경우 한 위원장의 은신은 장기화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성진 psjin@donga.com·김갑식·권오혁 기자
#광화문#폭력시위#조계종#한상균#민노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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