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대신 소설 쓰는 공대 교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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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들 대중서적 속속 출간

“중동 건설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현지 문화를 빠르게 익히는 겁니다.”

소설 ‘테미스2’의 주인공 수교가 리비아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반장에게 들은 조언이다. 수교는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마침내 사업 입찰에 성공했다.

박문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올 8월 건설맨의 현장 이야기를 담은 ‘테미스2’를 발간했다. 국내 중소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말레이시아 고층 건물 등 국내외 건축현장을 누비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건축이 소재인 만큼 비전문가가 듣기에 다소 생소한 단어도 많다. 하지만 상세한 해설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을 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오가는 대화와 에피소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박 교수는 “일반인이 건축을 어렵거나 전문가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며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소설로 접근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쓴 대중서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해당 분야 전문가들만 알 수 있는 논문만 쓰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현상이다. 박태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올 5월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 개정판을 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아일랜드’ 등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를 통해 생명공학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풀어냈다.

소설, 에세이 등 형식과 함께 공학, 청춘, 교육 등 내용도 다양해졌다. 서승우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쓴 ‘아침 설렘으로 집을 나서라’는 세계 최초로 ‘무인태양광 자동차경주대회’를 성공리에 치른 경험 등을 담은 에세이다. 유영제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서울대 입학처장 등의 경험을 살려 한국 교육 전반의 문제를 짚은 ‘교육이 바로 서야 우리가 선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공학이 전문화 세분화에만 매몰돼 대중과 괴리됐다는 비판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박문서 교수는 “공학이 ‘그들만의 리그’가 될수록 위험하다는 건 2013년 원자력발전 비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이공계 교수들이 대중서를 내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1997년 미국의 물리학자 엘리 골드렛이 쓴 소설 ‘한계를 넘어서’는 3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박태현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 중 대중서를 낸 학자의 비율이 높다”며 “공학 역시 대중과 소통할수록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공대#교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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