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멀긴 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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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소식을 물어다 주던 방물장사 아주머니가 중매를 섰다고 한다. 신랑이 훤하게 잘생기고 집안 형편도 괜찮다는 중매쟁이의 말에 친정엄마는 귀가 솔깃했다. 중매쟁이가 “다 좋은데 멀어서 좀…”이라고 뜸을 들였지만 친정엄마는 먹고살기 괜찮다는데 먼 곳으로 시집보내는 것쯤이야, 서운한 마음을 접고 혼사에 응했다.

그러나 산 넘고 물 건너 시집와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신랑은 장님이었다. 신부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친정엄마는 중매쟁이를 붙잡고 어떻게 그렇게 속일 수가 있냐고 따졌지만 중매쟁이는 “내가 멀어서 흠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그 신부는 결혼 첫해에는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의 손을 놓고 가버리면 누가 이 사람의 손을 잡아줄꼬.” 그 이후 할머니는 평생 남편의 손을 놓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친정이 예서 멀긴 정말 멀어. 그래서 자주 못 갔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요즘 나는 전북 무주군 포내리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짠해졌다가 솔직한 입담에 소리 내어 웃다가 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거나 이 마을로 시집와서 한평생 살아온 분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이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보건진료소장을 하고 있는 박도순 씨가 진료 틈틈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소연 삼아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거기에 그분들의 인물사진과 일상을 담은 사진들도 곁들여졌다.

“이런 것도 책이 될까요?”라고 내게 묻는 그를 부추긴 것은 내 집 마당을 쓰는 것이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포내리라는 작은 마을을 기록하는 것이 결국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기록하는 일이 되고, 이렇게 자진하여 빗자루 들고 구석구석을 쓸어 담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방대한 자료가 남게 될 것이 아닌가.

요즈음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지만 내 집 마당은 쓸지 않으면서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멀다는 해석이 달랐던 중매쟁이와 친정엄마처럼 눈먼 논쟁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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