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빅4’ 소속 20, 30대 ‘도덕적 해이’… “실적 미리봐 돈버는게 답” 주식놀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0일 03시 00분


감사 맡은 기업 미공개정보 이용… 6억 부당이득 6명 등 32명 적발

회계사는 기업 회계감사에서 알게 된 미공개 정보로 주식에 투자해 억대의 뒷돈을 챙겼다. 은행원은 고객이 믿고 맡긴 예금을 아예 자기 주머니로 빼돌렸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 회계사, 은행원 등이 공적 업무를 활용해 비위(非違)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돼 직업 윤리의식이 실종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이진동)는 회계감사 대상인 회사의 미공개 실적정보를 이용해 주식, 선물 등에 투자해 억대 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삼일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이모 씨(29), 배모 씨(30)를 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범행과 연루된 총 32명은 삼일(26명) 외에도 삼정(4명), 안진(2명)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회계법인에 소속된 20, 30대 회계사다. 구속 기소된 2명 외에 상대적으로 이득이 적은 장모 씨(29) 등 4명은 불구속 기소, 7명은 벌금 400만∼10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나머지 19명은 단순 정보를 누설했다는 이유로 금융위원회에 징계 통보했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이 씨 등 6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총 31개 기업의 공시 전 실적정보를 파악했으며 이 중 일부 종목에 투자해 부당이득을 올렸다. 이들이 거래한 종목은 대상, 엔씨소프트, 아모레퍼시픽. 제일기획 등 총 14개. 대학 동문, 입사 동기 등 개인적 친분으로 연결된 이들은 각자의 인맥을 활용해 회사의 정보를 취득했다. 사전에 확보한 실적이 증권사 예상보다 좋을 경우 매수하고 나쁘면 파는 식으로 총 6억6000여만 원의 부당이득을 거뒀다.

검찰이 공개한 모바일 메신저 내용을 보면 실종된 직업 윤리의식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다. 약식 기소된 회계사 이모 씨(30)는 주범 이 씨와의 메신저 대화에서 “회계사가 다른 직업에 비해 갖는 유일한 장점이 회사 숫자를 좀 빨리 본다는 건데, 이렇게 돈 버는 게 답인 듯”이라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도록 일명 ‘사이버 망명지’로 알려진 독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사용하기도 했고 구속된 이 씨, 배 씨는 아버지에게도 투자 정보를 건네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 회계의 감시자로서 자본시장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회계사의 대규모 불법 행위를 최초로 적발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일당이 챙긴 부당이득은 추징보전 청구해 전액 환수했다.

고객이 믿고 맡긴 예금을 몰래 빼돌린 은행 직원도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심우정)는 2009년 12월∼2013년 1월 서울 서초구의 한 지점 근무 당시 미국에 사는 고객 2명의 예금 4억9680여만 원을 총 6회에 걸쳐 인출한 혐의(횡령)로 전 신한은행 직원 유모 씨(46)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유 씨는 지난해 3월에도 사금융 알선 등의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강홍구 windup@donga.com·변종국 기자
#회계법인#주식놀음#도덕적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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