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상이군인과 태극마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3일 03시 00분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지난해 소치 패럴림픽에서 개최국 러시아는 금메달 72개 가운데 30개를 휩쓸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여러 종목에서 군인 출신 선수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러시아는 복무를 하다 장애인이 된 군인들을 운동선수로 키워내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얘기였다.

8월 4일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로 육군의 김정원 하사(23)가 오른쪽 다리를, 하재헌 하사(21)가 두 다리를 잃었다. 하 하사는 지난달 말 의족을 착용한 채 두 발로 걷는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약 3개월 만에 다시 걷는다!”는 글도 남겼다. 그 얼마 전 김 하사도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빠밤! 섰다, 걷는다.” 의족에 기대 두 발로 서게 됐지만 이들의 재활은 이제 시작이다. 성인이 된 뒤 다리를 잃었기에 의족에 적응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떨어져 나간 다리가 마치 있는 듯이 느껴져 찾아오는 극심한 환상통도 견뎌내야 할 것이다.

하 하사와 같은 나이였던 21세 때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정진완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 과장(49)은 “장애인이 됐다는 허망함에 한동안 술에 빠져 살았다. 삶을 끝낼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우연히 그해 개관한 세브란스 재활병원을 찾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보면서 큰 위안을 얻었고 그들을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휠체어농구를 하다 1989년 사격에 입문했다. 정 과장은 1994년 베이징 장애인아시아경기 사격에서 은메달을 땄고,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에서 세계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의 재활 과정 소식을 접하며 장면 하나를 상상해 봤다. 두 젊은이가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설원을 누비는 모습을…. 장애인스키는 비장애인스키에 비해 체격 조건에 따른 불리함이 덜하다. 우수한 장비와 효율적인 훈련이 보조를 맞추면 비장애인스키에 비해 짧은 시간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한국은 겨울올림픽 스키 종목에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지만 패럴림픽에서는 2002년 솔트레이크(미국) 대회에서 한상민(36·국민체육진흥공단)이 알파인스키 좌식 부문에서 은메달을 땄다. 3년도 안 남은 평창 패럴림픽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2022년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의족 장애인은 입식과 좌식 스키를 모두 할 수 있어 선택의 폭도 넓다.

문호는 활짝 열려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전문체육부 박승재 부장은 “두 분의 의사를 물어봐야겠지만 신인 선수 발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충분히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스키가 아니라 휠체어 농구나 사격 등 여름 종목을 해도 좋다”고 말했다.

나라를 지키다 다리를 잃은 젊은이들이 불굴의 투지로 다시 조국을 위해 나선다면 이런 감동적인 드라마가 또 있을까. 물론 싫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종목을 불문하고 운동은 꼭 시작하기 바란다. 중도 장애인의 가장 효과적인 재활 수단은 운동이니까.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상이군인#태극마크#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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