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방 이전 공공기관, 지역경제 기여는 ‘반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나홀로 이주 58%… 주말엔 서울로, 일감 발주도 타지 업체가 92% 차지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공사 본사에 근무하는 최모 씨(42)는 주중에 나주에서 5만 원도 쓰질 않는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며 금요일 퇴근 후 귀경하다 보니 돈을 쓸 ‘시간’이 별로 없다. 최 씨는 “혁신도시 이전 후 회식 문화가 많이 사라진 데다 끼니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다 보니 밖에서 소비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대도시에서 지방 혁신도시로 이사를 온 공공기관 직원 가족들은 교육이나 문화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 올해 4월 경남 진주시로 본사를 옮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근무하는 이모 씨(여)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운영하는 문화센터를 빼고는 괜찮은 문화시설이 없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다닐 만한 학원도 마땅치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2007년 2월 혁신도시특별법이 시행된 뒤 지난달 말까지 125개 공공기관이 10개 혁신도시와 세종시 등으로 본사를 옮겼다. 혁신도시도 도로, 아파트 등 기반시설 공사가 마무리되고 인구가 늘며 ‘사람 사는 도시’의 모양새를 갖췄다. 하지만 공공기관 이전 효과가 지역 경제 전반에 미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토연구원이 작성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지역발전 효과’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으로 본사를 옮긴 공공기관 직원의 소비 지출액의 50.5%는 여전히 해당 지역 밖에서 이뤄지고 있다.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혼자서만 이주한 ‘홑몸 이주 직원’이 전체의 57.7%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충북지역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 중 26.6%는 이전 거주지역에 살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비나 문화·여가비 등을 지역 내에서 지출할 여지가 많지 않은 것이다. 반면 가족을 동반하고 이주한 직원의 소비 지출액의 70.9%는 지역 내에서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이전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공공기관 직원의 가족 동반 이주를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자체들이 공공기관 유치를 위해 내놓은 지원 정책이라도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번 조사에서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은 공공기관 직원도 전체의 39.6%로 조사됐다. 권영섭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협력해 문화시설을 만드는 시범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혁신도시 사업 초기에 약속했던 교육 관련 지원 과제도 실행에 옮겨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지방세가 늘고 지역 인재 채용이나 지역 기업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등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 인재 채용 비율은 6월 말 현재 11.9%다. 올 상반기(1∼6월)에 각 기관이 지역 소재 업체에 연구·구매·공사 등을 맡긴 비율도 7.7%(금액 기준)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의 투자가 지역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용역 등을 수행할 지역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의 이전으로 혁신도시 10곳의 지방세 수입은 2012년 222억7700만 원에서 지난해 1976억2500만 원으로 증가했다. 그런데도 일부 지자체들은 투자에는 인색한 편이다. 이 지자체들은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이 단기간에 이뤄져 인구가 늘어난 만큼 기반시설을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한다.

나주몽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자체들은 혁신도시에 민간기업을 유치하고 키우는 역량이 부족하다”며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혁신도시에 투자를 끌어들이는 법안을 마련하고 지자체들이 재정을 제대로 집행하는지도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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