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감형 받으려… 마약사범들의 허위제보 백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0일 03시 00분


덮어씌우고… 필로폰 땅에 묻은 뒤 전과자를 판매상으로 지목
자작극벌이고 남편 신고男에 접근… “내 술에 마약탔다” 신고

“필로폰 100g을 사서 회사 비닐하우스 땅에 묻어놨습니다.”

마약사범으로 구속된 김모 씨(52)는 9월 면회 온 지인을 통해 대구지검 강력부에 마약상 A 씨(57)의 존재를 제보했다. 김 씨는 A 씨가 판매한 필로폰 100g을 땅에 묻어뒀다며 ‘내가 운영하는 조경회사 비닐하우스에 놓인 TV 거치대 밑’이라는 구체적인 위치까지 일러줬다. 과거 A 씨와 마약거래를 했던 기록이라며 800만 원을 이체한 본인 통장기록도 제시했다. A 씨는 마약 전과가 여러 건 있는 인물이었다.

마약범죄는 뚜렷한 피해자가 없고 워낙 은밀히 이뤄져 관련자의 제보가 없이는 적발이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마약 범죄를 제보하면 처벌 수위를 낮춰 주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다.

검찰이 급히 김 씨가 말한 위치를 확인해보니 필로폰 100g이 봉투에 싸여 묻혀 있었다. 하지만 검찰에 붙잡혀온 A 씨는 한사코 혐의를 부인했다. 연이은 추궁에도 “김 씨에게 과거 800만 원을 떼먹은 적은 있지만 마약을 판 적은 없다”고 강변했다.

검찰은 김 씨와 A 씨의 통화기록과 위치를 조회해봤다. 김 씨가 “지난해 12월 중순 A 씨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 마약을 샀다”고 진술했지만, 그 시기에 둘의 동선은 단 한번도 일치하지 않았다. 수상하다는 생각이 든 대구지검 강력부 김준선 검사(40·사법연수원 37기)는 김 씨의 옥중 면회녹취록 수십 개를 확보해 일일이 들어봤다. 면회 온 지인에게 “작업복 100벌(필로폰 100g)을 땅에 묻어라”는 식의 암호를 이용한 비밀대화가 여러 차례 오간 정황이 포착됐다.

김 검사는 김 씨가 감형을 받으려고 A 씨를 무고했다고 확신하고 집중 추궁하자 진실이 드러났다. 김 씨는 “면회 온 지인을 시켜 필로폰을 사서 땅에 묻어둔 뒤 감형을 받으려고 검찰에 허위 제보했다”고 털어놨다. A 씨를 지목한 건 마약 전과가 있는 데다 과거 돈을 갚지 않은 데 따른 괘씸한 마음 때문이었다. 대구지검 강력부(부장 강종헌)는 필로폰 30g과 대마 100주를 투약 보관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김 씨를 필로폰 100g 구입과 무고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29일 밝혔다.

검찰에 체포된 마약 사범들은 감형을 받기 위해 갖가지 무고행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택배를 이용해 마약 전과가 있는 지인의 주소로 마약을 부친 뒤 수사당국에 신고하거나, 측근에게 돈을 주겠다고 유혹해 마약을 사게 한 뒤 신고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최근에는 마약사범 가족마저 감형을 바라고 수사기관에 허위 제보를 한 사례까지 있었다. 조모 씨(44·여)는 남편의 필로폰 투약 사실을 수사기관에 제보한 B 씨에게 복수하고 남편의 감형을 위해 ‘꽃뱀’을 자처했다. 조 씨는 B 씨에게 따로 술을 마시자며 접근한 뒤 자기 술잔에 몰래 필로폰을 타 마신 뒤 “B 씨가 술에 마약을 타 먹였다”고 허위 신고했다가 덜미가 잡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를 선고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감형을 노린 마약 무고 범죄는 반드시 허술한 연결고리가 포착될 수밖에 없다”며 “수사기관에 허위 제보했다간 반드시 적발돼 형량만 늘어난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마약#마약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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