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안 된다’는…얘기를…듣기…싫습니다. 나는…한국인이…안 된다는 걸…믿지…않습니다.”
치밀하게 계산한 대사라고 하더라도 노력한 정성은 확실히 전해졌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르네 마보안 교수가 어눌하지만 힘찬 발음의 한국말을 꺼내자 정장 차림의 청중이 잠시 웅성대다 곧 큰 박수가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동아비즈니스포럼 2015’의 기조강연은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마보안 교수는 2005년 같은 학교의 김위찬 교수와 함께 ‘블루오션 전략’을 써서 세계적 경영 베스트셀러로 만든 바 있다. 2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로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강연에서 그는 최근 10년간 꾸준히 가다듬고 발전시킨 블루오션 전략을 한국의 경영자들에게 설명한 후 저성장 경제에서도 기업가다운 열정과 희망을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저성장 시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의 조화가 중요함을 강조한 강연이었다.
블루오션 전략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을 피하고, 비(非)고객을 고객으로 만들어 나만의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라는 경영 이론이다. 마보안 교수는 새롭게 발굴한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열대지방 사람들이 즐겨 신는 저가의 플립플롭(일명 ‘조리’·발가락 사이에 줄을 끼워 신는 슬리퍼)을 고가의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시킨 브라질의 아바이아나스(Havaianas),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단품 판매하지 않고 월 정기구독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 등을 한층 진일보한 블루오션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기존 산업의 고정관념은 무시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강연장은 마보안 교수가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2008년 퇴임)과의 일화를 어눌한 한국어로 소개하자 더욱 생기가 넘쳤다. 엔지니어 출신인 윤 전 부회장은 10년여간 삼성전자를 글로벌 거인으로 성장시킨 한국의 대표적 전문경영자다. 2009년에는 미국의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글로벌 성과 2위 경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당시 1위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다.
마보안 교수는 유럽의 한 전자회사가 주최한 행사에서 윤 전 부회장을 만나 영어 연설문을 교정해 준 일이 있다고 회상했다. 윤 전 부회장이 ‘B’와 ‘P’의 발음 구분을 어려워하자 미국 국적인 마보안 교수가 한국인이 좀 더 발음하기 쉬운 단어로 문장을 바꿔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전 부회장은 준비해 온 표현 그대로 읽겠다고 우겼다. 마침 방 안의 에어컨도 고장이 나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고집 센 두 사람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마보안 교수가 ‘이 사람 돌머리 아닌가’ 하고 짜증을 내려는 찰나, 윤 전 부회장이 마침내 제대로 된 ‘B’와 ‘P’ 발음으로 연설문을 읽어냈다.
마보안 교수는 이런 황소고집이 삼성전자를 글로벌 일류로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스피릿(투지)은 윤 전 부회장만의 스피릿이 아니고 한국인 모두의 스피릿입니다. 한국인은 도전에 맞서 일어설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저성장 위기감이 도는 한국 경제를 위한 진정성 느껴지는 조언이었다.
기조강연 후 마보안 교수는 블루오션 전략을 실제 기업 경영에 적용해 큰 성공을 거둔 두 명의 비즈니스 리더를 단상으로 불러냈다. ‘중저가 럭셔리’라는 새로운 호텔 비즈니스를 만들어낸 마이클 레비 ‘시티즌M’ 호텔 체인 창업자 겸 최고운영책임자, 그리고 호주 최대 보험 그룹인 ‘선코프’에서 재임기간 중 기업 가치를 약 7조 원이나 높인 패트릭 스노볼 전 최고경영자(CEO)다.
금융업에 들어오기 전 영국 육군에서 기갑부대장으로 복무한 바 있는 스노볼은 강인해 보이는 외모와 어울리게 “한국의 대기업들처럼 규모가 크고 오래된 조직에 블루오션 전략과 같은 혁신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선 전략도 중요하지만 무자비한 실행이 꼭 필요하다”면서 “처음 1, 2년은 부드럽게 직원들을 독려하다가 3년째부터는 ‘이 방식이 싫으면 여기를 떠나라’라고 터프하게 밀어붙인 것이 나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바람직한 관리자의 요건을 커다란 종이에 적어서 전 직원에게 나눠 줬다. 그걸 보고 상사를 매일 평가해 보라고 했다. 그래야 관리자들 스스로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작은 스타트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레비는 “무자비한 실행력도 필요하지만 경영자는 얼굴에서 따뜻한 웃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가벼운 반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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