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홍시를 먹으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일 03시 00분


때로는 남들이 부럽다. 눈부신 젊음이 부럽고 나보다 솜씨가 좋은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이 부럽다. 돈이 많은 부모 만나 넘치게 많은 것을 누리는 금수저들도 그렇고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하는 일마다 척척 잘 풀리는 사람도 부럽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본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이 있었지만 젊었을 적엔 젊음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 줄 미처 몰랐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이 부럽고 미래가 불확실한 젊음이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젊음이 좋은 줄 몰랐던 것은 간절히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저절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저절로 주어진 것들에서는 감사와 행복을 느끼기가 참으로 힘든 일이니 어쩌면 그들이 가진 것이 우리의 생각만큼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제는 마당에 감나무가 있는 집에 놀러갔다. 식탁 한쪽엔 시장에서 산 발그레한 주홍빛의 먹음직스럽게 잘생긴 홍시가, 한구석에는 거무튀튀한 자주색의 작고 볼품없는 홍시가 담겨 있었다. 양쪽의 홍시를 내놓으며 주인이 말했다.

“우리 집 홍시가 맛은 있지만 일단 보기 좋은 것부터 잡숴 보세요.”

누구라도 고운 홍시에 먼저 손이 갈 것이다.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살짝 달큼한 맛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못생긴 감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찐득한 고약처럼 보이는 그 감을 한입 베어 물으니 세상에, 그 단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가을을 지나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던 그 감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 있어서인지 그 단맛이 사뭇 오묘하고 진득했다.

“감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난 다음부터는 나무에서 양분을 받는 게 아니라 제 안에서 단맛을 우려내는 모양이에요. 맛이 참 기막히죠?”

채 익기도 전에 또는 익자마자 바로 따는 것과 다르게 다 익은 후에도 천천히 나무에서 오랜 시간 자신을 더 숙성시킨 홍시의 맛은 말 그대로 기가 막혔다. 그렇게 한 개의 홍시가 제대로 익어 맛을 내는 데에도 사계절이 다 필요한데 사람의 일생은 어련할까.

사람도 어느 정도 성숙할 때까지는 뿌리가 주는 양분으로 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제 스스로 익어야 하는 것. 진정 부러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제 안에 차곡차곡 향기를 쌓아 달콤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내공이다. 홍시를 먹으며 마지막 달을 시작한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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