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조계사에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어제 “노동법 개악 처리를 둘러싼 국회 상황이 중단될 때까지 조계사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이른바 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끝난 뒤 이곳에 들어가 2차 집회가 끝나고 거취를 밝히겠다며 나갈 뜻을 시사했는데 번복한 것이다. 경찰은 한 씨가 노조 자금으로 복면용 두건 1만2000장을 구입해 나눠 주고 “청와대 진격”을 외치며 폭력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본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1차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일거리를 주지 않겠다”고 압력을 가했다는 한 씨가 ‘노동법 개악’ 운운하는 것은 앞뒤 안 맞는 일이다. 전체 근로자의 3%에 불과한 귀족노조 민노총이 불교를 ‘인질’ 삼아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칠 노동법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처리하도록 압박하는 것도 법치를 조롱하는 일과 다름없다.
애초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한 씨의 신변보호 요청을 받아들인 것부터 잘못이다. 조계종 관계자는 어제도 “화쟁위를 통해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대화와 중재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했으나 사회문제에서는 종교인의 순수함이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조계사는 총무원의 직영 사찰이다. 한 씨가 조계사에 들어왔을 때 총무원장이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고 하지만 귀국한 후에도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책임하다. 자승 총무원장은 이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응당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천주교 명동성당이 엄혹한 유신정권 이래 민주화가 이뤄질 때까지 시국사범의 은신처가 된 때가 있다. 명동성당은 2000년 한국통신노조의 농성을 물리친 이후 더이상 범법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국가 법원이 사전구속영장까지 발부한 범법자를 종교가 보호하는 나라를 정상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경찰은 한 씨 검거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한다면서도 조계사 경내 진입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조계사에 진입하지 않고 한 씨를 검거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도 경찰도 불교계 눈치를 보는 듯하다. 선거에서 지면 정권이 교체될 뿐이지만 법 앞의 평등이 지켜지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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