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발생한 서해대교 케이블 손상 사고의 원인이 케이블에 몰린 과도한 힘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교량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도로공사는 낙뢰에 따른 손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만약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 케이블 자체의 결함이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질 경우 교량 전반의 안전성을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한 삭도(索道·ropeway) 전문건설업체 대표 A 씨는 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서해대교에 설치된 케이블이 오랜 기간 받아온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끊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업체는 스키장 등 높은 지역에 리프트를 설치해 각종 기계와 건설자재를 운반하는 일을 하고 있다.
A 씨는 잘린 케이블 단면을 근거로 들었다. 서해대교에 설치된 케이블은 연필심 두께의 철사 90여 가닥을 꼬아 만든 뒤 폴리염화비닐(PVC) 피복으로 덮은 것이다. 이번 화재로 잘린 72번 케이블의 지름은 280mm, 일부가 손상된 56번과 57번 케이블의 지름은 180mm이다.
A 씨는 “케이블이 낙뢰를 맞으면 일시적으로 매우 높은 고압을 받아 해당 부위가 녹으면서 단면이 뭉뚝해지고 길이도 줄어든다”며 “하지만 72번 케이블은 여러 개의 가닥이 뜯겨나간 모습으로, 이는 인장강도를 못 이겨 끊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원인 역시 스트레스를 받은 케이블 내부에서 생긴 마찰열 때문에 화염이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케이블 피복 안에는 철사들이 외부의 바람이나 힘 때문에 마찰하면서 온도가 과도하게 상승하거나 열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윤활유 또는 절연유가 들어 있다. 이 물질이 평소엔 마찰을 줄이는 역할을 하지만 과도한 열 때문에 불이 날 경우 화염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효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낙뢰 외에 다른 사고 원인을 찾기 쉽지 않지만 낙뢰가 왜 거기 떨어졌고 불이 붙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 많다”며 “타지 않은 케이블 사진에 윤활유 또는 절연유가 보이지 않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까지는 케이블 손상의 원인으로 낙뢰를 꼽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서해대교 케이블 화재 원인조사단의 자문을 맡고 있는 장승필 서울대 명예교수는 “낙뢰로 인한 전류로 케이블 강선이 뜨거워지고 강선을 감싸고 있는 왁스(윤활유 또는 절연유를 지칭)에 불이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마찰에 따른 화재 가능성 등에 대해 “마찰로 불이 나기란 매우 어려운 데다 케이블 피복 안에 왁스가 채워져 있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국토교통부와 도로공사도 “낙뢰 외에 다른 가능성은 찾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도로공사는 7일 화재 원인 자문을 위해 방한한 프랑스 낙뢰전문가 알랭 루소 씨가 72번 케이블의 화재 원인을 낙뢰라고 추정했다고 밝혔다. 루소 씨는 2005년 1월 발생한 그리스 리온안티리온 교량 낙뢰 사고 조사와 복구에 참여한 인물이다.
도로공사가 이날 공개한 의견서에서 루소 씨는 “오래 지속되는 소전류(small current)만이 불을 발생시키고 케이블이 잘릴 때까지 불을 유지시킨다”며 “소전류는 낙뢰보호시스템(피뢰침)에 잡히거나 낙뢰감지시스템으로 감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기상청은 화재가 발생한 3일 오후 6시 전후로 낙뢰는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재 10분 전 낙뢰로 추정되는 빛을 포착한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