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이민 간 남편과 자녀를 남겨두고 홀로 귀국한 뒤 무속인이 돼 10년 넘게 따로 살아온 아내가 낸 이혼소송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당초 1,2심은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소송을 낼 수 없다는 유책주의 원칙에 따라 이혼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법원이 장기간 별거에 따른 혼인관계 파탄에 남편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아내 A 씨(49)가 남편 B 씨(51)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던 원심을 파기하고 이혼을 허용하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A 씨는 1990년 남편과 결혼한 뒤 세 자녀를 낳고 1998년 가족과 함께 남미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2004년 A 씨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
A 씨는 “남편이 이민 직전 사업이 부도난 책임을 처가로 돌려 갈등이 심해졌고, 돈을 가져오기 전까진 가족이 있는 남미로 돌아오지 말라고 해 따로 살게 됐다”며 2012년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1,2심은 혼인관계가 파탄 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이 A 씨에게 있다고 판단해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 씨가 혼자 귀국해 갑자기 무속인이 된데다 이후에도 수년 동안 가족에게 돌아갈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편이 이혼 의사가 있으면서도 오기나 보복으로 이혼에 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A 씨가 무속인이 된 이상 평범한 가정으로 돌아가기 어려운데다 남편이 A 씨와 별거하는 동안 가정으로 복귀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남편에게도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A 씨의 이혼소송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부가 결혼하고 함께 산 기간이 13년인데 별거한 기간도 11년이나 되고, 둘 사이에 미성년 자녀가 없는 점도 감안됐다. 대법원은 9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허용하는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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