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회관 뒤쪽 오르막길을 오르면 현대식으로 지은 유엔평화기념관이 나오고 바로 옆에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한(恨)을 토해내듯 우뚝 서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200여만 명(추정)의 아픔이 함축된 역사 기록물이다. 건물 표면은 몸의 상처와 아픈 기억을 형상화해 진회색 벽돌로 음각을 새겼다.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세계인권선언일인 10일 부산 남구 당곡공원에서 개관한다. 지난해 5월 완공됐지만 역사관 관리 주체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면서 1년 7개월 동안 문을 열지 못했다. 실내 일부 시설을 보수했고 안전시설도 보강했다.
10일 문을 여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 4층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기억의 터널’.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제공역사관이 부산에 들어선 까닭은 일본으로 끌려간 동포들이 조국 땅을 마지막으로 밟았던 곳이자 광복 후 첫 귀향의 땅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역사자료를 전시·체험할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역사관은 522억 원을 투입해 연면적 1만2062m²에 7층으로 지었다. 3개 층은 전시실로, 나머지는 수장고와 교육시설 편의시설 등으로 활용된다. 상설전시실인 4, 5층에는 만주사변(1931년 9월 18일) 이후 강제동원 관련 유품과 기증품, 기록물 등 192건 354점이 전시된다. 패널 453점과 영상 34개, 모형 12개가 선을 보인다. 6층은 기획전시실로 쓰인다.
기억의 터널로 시작되는 4층에는 15세에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끌려간 어린 노무자와 자살특공대로 동원된 고 인재웅 씨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일본 전역 3900여 개소의 작업장에 동원된 피해자의 어깨띠와 징용고지서, 군사 우편, 위안부 관련 판결문도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고 윤병렬 씨가 귀국하면서 가져온 여행가방과 16가지 자료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보여준다. 일제의 비인도성과 잔혹성도 엿볼 수 있다.
고된 탄광 생활과 작업장의 실상을 4·4조의 운율에 맞춰 기록한 고 강삼술 씨의 ‘북해도 고락가’는 조선인의 처참한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험난한 귀환 과정과 한 많은 생을 마치고 유골마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담겨 있다.
5층 전시실은 악명 높은 노무자 인신구금 형태의 숙소인 ‘다코베야와 탄광, 일본군 위안소를 실물 그대로 재현했다. 위안소 옆에선 생존 최고령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97·경남 통영)의 육성 영상도 볼 수 있다. 아픔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을 담은 ‘진혼의 다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강제동원의 역사와 한일 관계를 함축해 매듭 형태로 설치했다.
역사관 운영은 이달 말까지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가 맡고 내년부터는 행정자치부로 이관돼 위탁 운영될 예정이다. 부산시는 역사관 주변 유엔평화기념관과 유엔묘지, 평화공원 등과 연계해 평화와 인권의 상징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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