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연구실적 검증도 안 거쳐… 국편 “서류 검토로 충분하다 판단”
교육계 “국편 선발과정 이해 안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을 공개모집하면서 단 한 차례의 면접조차 없이 서류로만 집필진을 선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집필진에서 사퇴한 서울 대경상업고 김형도 교사 문제는 이 같은 허술한 선발과정이 빚어낸 사고인 셈이다. 공모로 선발된 다른 집필진도 김 교사와 유사한 사례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집필진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국편 고위 관계자는 11일 본보 취재팀에 “공모 집필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원자들로부터 지원서류만 제출받았을 뿐 이후 면접이나 학위 및 연구실적 검증 등의 다른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원자들이 대부분 현직 교사와 대학 연구원들인 점을 감안해 기본적으로 신뢰했다”며 “서류만 검토해도 충분히 양질의 집필진을 가려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직 응모자가 서류에 적어 제출한 내용만으로 집필진을 선발했다는 말이다.
국편은 김 교사의 본래 담당 과목이 한국사가 아니라 상업이라는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편 관계자에 따르면 국편은 지원서에 교육 경력 기간과 역사(한국사) 교사 자격증 보유 여부만 기재하도록 했다는 것. 김 교사는 상업과목 교사지만 2010년 한국사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때문에 김 교사는 ‘자격증이 있다’고 썼고, ‘대학원에서 역사 관련 연구로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고 기재했다. 본보 취재 결과 김 교사는 성균관대에서 역사교육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외국어대에서 한국 고대사 박사과정을 밟았으나 학위는 취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사는 올해 1학기부터 상업과 함께 한국사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를 가르친다’고 썼지만, 자신이 상업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은 굳이 기재하지 않았다. 김 교사는 대학에서도 역사가 아니라 통상 분야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편 관계자는 “김 교사가 제출한 서류에 한국사를 가르친다고 쓰여 있어 당연히 한국사 교사인 줄 알았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온 나라가 국정 교과서 문제로 홍역을 치를 정도로 중요한 사안에서 국편이 면접도 없이 이렇게 허술하게 집필진을 선발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편 관계자는 “김 교사가 대학원에서 고대사 연구도 한 만큼 집필 능력이 충분한데 이번 논란으로 중도하차하게 된 점이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김 교사가 교과서 집필 능력이 부족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국편이 김 교사를 선발한 데는 고대사 지원자가 극소수였던 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국편에 따르면 응모자 대부분이 근현대사 집필을 원했고, 김 교사처럼 고대사를 지원한 사람은 극소수였다는 것. 국편 관계자는 “고대사는 응모자 자체가 적어 양질의 집필진을 뽑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사 사태를 계기로 국편이 지금이라도 나머지 집필진 46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비판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자 성추행 논란으로 사퇴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 교사 사례 모두 국편의 ‘비밀주의’가 문제를 키웠기 때문이다. 김 교사 후임을 추가 선정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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