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거액 기부가 화제가 된 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 재벌들은 자식을 낳으면 기념으로 주식을 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저커버그 부부는 최근 딸을 낳자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며 보유 지분의 99%(약 52조 원)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엄청난 액수도 놀랍지만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도 보통의 한국인과는 다르다.
미국은 억만장자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기부를 많이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0%가 지난해 평균 3000달러(약 350만 원)를 기부했다고 한다. 미국은 기부에서도 세계 1등이다.
미국의 빈약한 사회복지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미국의 기부문화를 유럽인들은 시큰둥하게 여긴다. 언론보도나 지인들에 따르면 미국 부자들의 기부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평가는 냉정한 편이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최근 기사에서 “미국의 기부문화는 취약한 공공복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 재정으로 책임지는 교육과 의료, 예술 분야의 재원을 미국은 민간 기부로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 선진국들은 사회복지가 발달해 개인의 선심에 기댈 필요가 없다. 유럽인들은 세금만 잘 내면 국가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배분하는 것이 더 공정하고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조세부담률(GDP 대비 세금 비율)은 22%로 덴마크(46%)보다 크게 낮고 오히려 미국(19%)과 비슷하지만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체감은 큰 차이가 난다.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80%를 보험료와 세금 등으로 내지만 돌려받는 것은 60%도 안 된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은 민간 기업들이 의료보험과 연금을 담당해 시장이 커질수록 보험회사와 병원만 이익을 보고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게 적다. 반면 독일은 공공부문을 통해 의료 교육 등을 직접 ‘공동구매’함으로써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저커버그가 이번에 기부를 하면서 자선재단이 아닌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해 직접 관여하겠다고 밝힌 것도 배경이 비슷하다. 그는 2010년 자선단체를 통해 공립학교에 1억 달러를 기부했지만 대부분 컨설턴트 등 중간 업자들에게 빠져나가고 학교에는 실제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한다.
독일을 흔히 ‘서비스의 사막’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일요일에는 슈퍼마켓이 문을 열지 않고 평일도 오후 6시 이후에는 모두 닫는다. 개인적으로 파출부나 운전사를 고용하는 일도 드문데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남의 집 일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별로 없다. 둘째,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부자도 직접 정원을 가꾸고 집안일을 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다. 즉, 대부분의 사람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는 얘기다.
인간다운 생활은 어디에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점점 금수저 흙수저의 ‘계급사회’로 가고 있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세계 톱이다. 기부도 사회복지도 없이 각자도생하는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부자는 너무 부유하지 않고 빈자는 너무 가난하지 않은, 누구나 주거 교육 의료 문화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꿈일까? 글로벌 경쟁에 치이고 일부의 도덕적 해이에 떠밀려 끊임없이 조정을 하면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34조 1항)는 원칙을 실현하는 나라들이 유럽에는 많다. 중요한 것은 부(富)의 총량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하느냐 하는 가치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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