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5층짜리 상가 건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진화 과정에서 오래된 건물이 붕괴돼 소방차를 덮쳤다. 이 사고로 소방관 1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소방관이 순직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다. 화재가 난 건물의 붕괴 위험도와 화재 진압 작전의 적절성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최종 보고서가 나온 건 2013년 11월. 19개월이 걸려 완성됐다. 조사위원들은 해당 소방서와 지역 소방노동조합, 필라델피아 시의 관련 부서를 상대로 1년 넘게 조사를 했다. 이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건물 관리와 소방 인력 운영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이렇게 완성된 보고서는 97페이지에 달했다.
이 보고서에는 희생된 소방관에게 적절한 장비가 지급됐는지부터 평소 훈련 내용과 건강 기록까지 상세히 담겼다. 건물 붕괴에 대비한 적절한 교육이 있었는지도 포함됐다. 이런 철저한 조사는 비슷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지만 안타깝게 희생된 ‘소방영웅’을 보내는 마지막 예우이기도 하다.
미국은 매년 100여 명에 이르는 소방관의 순직을 줄이기 위해 1998년부터 ‘소방관 사망조사 및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붕괴 사고의 경우 건물 지붕과 벽면 바닥 등으로 나눠 상태와 위험도를 분석한다. 보고서가 나오면 온도별 붕괴 실험 등을 실시한 뒤 매뉴얼과 안전사고 예방 지침을 보완한다.
미국과 같은 소방관 사고 조사 프로그램이 한국에서도 시행된다. 17일 충남 천안시 중앙소방학교에 문을 연 ‘재난현장 사고 분석센터’는 소방관 사고를 조사하고 분석해 예방 프로그램과 보호 장비를 개발한다. 센터(311m²)에는 증거물 분석실, 데이터베이스 분석실 등이 있다. 소방관과 연구원 등 11명이 조사와 분석을 맡는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33명에 이른다. 소방관 1만 명당 사망률(1.85명)은 미국(1.01명)과 일본(0.70명) 등 선진국을 크게 웃돈다. 지금까지는 소방관이 순직해도 이를 심층적으로 조사해 분석하는 기구가 없었다. 이동성 중앙소방학교장은 “분석센터 출범으로 소방관이 사용하는 기존 보호장비를 개선하고 다양한 재난 유형에 대비하는 교육과정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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