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IMF 온다.’ 정의화 국회의장, ‘그건 내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멘탈 쩔죠? 더 가열차게 응원해 주세요.”
@187C****가 올린 이 트윗은 4000회가 넘는 리트윗을 기록해 정치 이야기에 냉소적인 흐름을 보이던 트위터를 달궜다. 국가 의전서열 1, 2위인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면대결을 펼치고 있다. 청와대는 쟁점 법안을 빼고 선거구획정법안만 처리하면 “국회의원의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했고, 정 의장은 “경제, 노동 관련 법안을 직권상정하려면 현 경제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라는 판단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직권상정이 불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 의장은 친정인 새누리당의 압박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정 의장이 “직무유기 안 한 사람에게 직무유기 말하는 건 말의 배설, 말 함부로 배설 말라”고 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제기한 국회의장 탄핵 의견은 에피소드로 끝나는 분위기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내홍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을 제치고 정 의장이 정치의 주인공이 되는 다소 생경한 풍경이 연말을 달구고 있다. 술자리가 많은 송년모임에서도 이른바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진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의원은 정부의 경제활성화 법안을 재벌민원처리 법안으로 규정하고 20회의 시리즈를 트위터에 올려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박 의원은 “청와대가 직권상정 요구하는 경제활력법, 일명 원샷법은 재벌세습 민원을 원샷에 해결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은수미 의원은 “아내의 존재이유가 남편 밥해주는 게 아니듯 국회의 존재이유가 박 대통령 관심법 통과시켜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 800여 회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반면 @chun****은 “일자리 만들려는 법안도 막는 국회, 그나마도 (선거구획정) 법정시한 되니 직권상정 들고 나오는 국회의장. 국민들을 위한 경제 관련 법안은 직권상정 안 하겠다? 이참에 다 옷 벗겨라”라고 주장해 100여 회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bdec****는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의 국회의장 탄핵론을 거론하며 “나라가 거덜 날 경제 문제는 외면하고 국회의원 지역구에만 직권상정을 한다는 건 자격 미달”이라고 주장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직권상정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보다 다소 많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고 이 뉴스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10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 동안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 직권상정(청와대 정의화 포함)을 언급한 문서는 모두 5만7967건이 검색됐다. 15일 하루 1만2849건을 기록해 메인 이슈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정 의장이 기자회견을 한 16일에는 2만4237건을 기록해 정치 뉴스를 주도했다. 청와대로부터 시작된 입법전쟁은 과격한 언어가 난무하는 전쟁터 같았다. 한 언론은 ‘어전회의’가 씁쓸한 유행어가 됐다고 했다. 직권상정과 함께 언급된 언어의 긍정어 분포는 18.1%에 불과했고 부정어 분포는 61.1%였다.
직권상정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 2위는 국회의장과 대통령이 차지했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수장이 강 대 강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대통령은 ‘국회의 존재이유’ ‘밥그릇’ 등의 표현을 쓰며 압박했고 국회의장은 ‘초법적 발상’ ‘불쾌하다’는 표현으로 응수했다. 3∼5위는 법안상정, 압력-압박, 새누리당이 차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법안의 직권상정을 위해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다는 스토리를 완성했다. 6위엔 경제가 올라 지금의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상황 인식의 차이를 반영했다. “(경제가) 국감 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비상사태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7위에 오른 야당은 최근 분당 사태를 맞은 새정치연합의 내홍이 직권상정 논란의 한 원인이라는 여론을 반영한다. 8, 9, 10위엔 통과, 노동, 비정규직이 올라 노동관계법도 쟁점이 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번 청와대의 강수가 다가올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견제하고 ‘국회심판론’을 점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의 초선 의원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법 리더십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 국회에 불어 닥친 한파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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