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외곽 응급실行 18분 안팎… 노인 많은 곳이 되레 열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1일 03시 00분


[프리미엄 리포트]
[수도권 기반시설 접근성 분석]학교-응급실-백화점·대형마트

이달 초 어느 날 오전 8시 반경 경기 광주시 태전초등학교 진입도로. 등교시간을 30분가량 남겨두고 노란색 12인승 학원버스 대여섯 대가 학교 앞에 섰다. 버스마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초등학생 10여 명이 우르르 내렸다. 홍은주 태전초 녹색어머니회장은 “학교는 먼데 대중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아이들 등교가 고민거리”라며 “다닐 필요가 없는 학원인데도 버스로 등하교를 시켜준다고 해서 매달 10만 원이 넘는 수강료를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지역의 신도시에서는 이처럼 학원버스로 등교하고, 하굣길에는 이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직행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학교 등 도시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파트부터 대거 건설한 난개발의 결과다. 실제로 일부 수도권 택지개발지구 인근 지역은 농촌이나 섬 지역처럼 학교 접근성이 떨어졌다.

○ 도심 속의 통학 오지

20일 동아일보와 한국교통연구원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읍면동 지역의 초등학교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농어촌 및 도서지역과 함께 택지지구 인근 지역이 접근성 하위권에 대거 포함됐다. 경기 다산신도시 옆인 남양주시 양정동(걸어서 25.41분), 부천 옥길지구 근처인 시흥시 과림동(걸어서 26.04분)의 초등학교 접근성은 경기지역 544개 읍면동 중 각각 529위, 531위로 연천군 등 접경지역과 비슷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광주시 광남동(걸어서 11.56분)도 407위였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지방자치단체는 장기적인 성장관리 방안을 수립하고 기반시설을 마련하는 체계적인 개발을 해야 한다”며 “무리하게 주택 인허가를 늘리면 주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은 다른 수도권보다 학교 접근성이 양호했다. 하지만 서울지역 내에서는 격차가 뚜렷했다. 교육 여건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보다 강북지역이 통학은 훨씬 더 편리했다. 이른바 학세권(학교에서 가까운 지역) 상위지역에 한강 이남지역보다 강북이 더 많이 포함됐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센터 실장은 “개발이 일찍 시작됐고 밀집 개발이 이뤄진 강북지역은 학교 등 기반시설의 접근성도 좋은 편”이라며 “학교의 명성에 민감한 강남 학부모와 거리를 더 따지는 강북 학부모들의 성향이 시장에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응급실 먼 노인 밀집지역

지난달 11일 오전 10시경 경기 가평군 하면 ‘김외과’ 대기실은 아침부터 온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이 병원에서는 의사 2명이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에 약 120명을 치료한다. 김외과 관계자는 “교통사고 중상자나 뇌중풍(뇌졸중) 응급환자가 오면 구급차를 불러 주변의 큰 병원으로 이송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응급시설 접근성이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농어촌 지역, 도심 외곽지역에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응급시설 접근성 하위 10곳 중 7곳은 노인 인구비율이 서울 전체 평균(8.06%)보다 높았다. 성북구 정릉 3·4동, 은평구 수색동, 성북구 길음2동 등 주로 강북의 외곽 지역이다. 경기는 연천군 중면과 장남면, 가평군 북면과 상면 등 하위 10곳 모두가, 인천은 하위 10곳 중 옹진군 영흥면, 강화군 화도면 등 7곳이 지역 평균보다 노인 인구비율이 높은 노인 밀집 지역이었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역마다 노인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거점병원을 세웠지만 의사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노인복지 차원에서라도 의료시설 취약지역에 의사를 충분히 확보하고 신속한 환자 이송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백화점은 강북 vs 대형마트는 강남

백화점 등 판매시설로의 이동시간이 짧은 ‘점(店)세권’도 지역별로 서로 다른 특징을 보였다. 소득수준이 높은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백화점 접근성은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이 상위 10곳 중 8곳을 차지했다. 서울 백화점 접근성 1위는 강북 아파트촌이 모인 성북구 길음2동(승용차로 3.42분)이었다. 이곳의 반경 1km 내에 백화점이 5개나 있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강북지역 부자들은 중장년층이 많아 가장 가까운 백화점만 찾는 경향이 있다”며 “강남 소비자들은 거리가 멀어도 다양한 쇼핑센터를 경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비교적 저렴하게 쇼핑할 수 있는 대형마트의 접근성에서는 서울의 한강 남쪽지역이 상위 10곳 중 8곳을 차지했다. 서울 대형마트 접근성 1위는 빌라가 많은 동작구 사당4동(승용차로 8.51분)이었다. 반경 1km 내 대형마트 수는 3개였다. 이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강북이든 강남이든 마트의 서비스 품질과 관계없이 가까운 곳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백인수 롯데유통 자문역은 “최근 백화점들이 서울 접근성이 좋은 판교 등 경기지역에 매장을 내고 서울 고객까지 유치하려고 한다”며 “유통업계에서 지역별 접근성을 응용한 마케팅 분석은 이미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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