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얼굴 표정, 목소리 톤, 행동 등을 흉내 낸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전파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감정의 전염’이라고 말한다.
감정의 전염은 기업 성과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리학자들은 긍정적 정서가 개인의 창의성이나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설명한다. 조직의 리더나 조직원이 긍정적 감정을 지속적으로 전파하면 그 조직 전체의 역량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보다 전염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신강현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설명은 이랬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받을 이익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합니다. 그래서 긍정적 신호보다 부정적 신호를 훨씬 빨리 알아채죠. 특히 상대적 강자가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면 전염 강도는 더 커집니다.”
물론 수평적 관계에서도 감정의 전염은 일어난다. 리더의 감정이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전파되고 구성원들의 감정은 조직 내에서 서서히 확산된다는 차이뿐이다. 많은 기업이 사업장마다 상담심리 전문가들을 배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직 전체에 부정적 감정이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잠재적 전파자를 한 명이라도 더 줄이겠다는 의지다.
3년 전 한 민간연구소 리포트에서 접했던 ‘감정의 전염’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건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최근 인사를 통해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대기업 인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승진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시에 직장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퇴직자 수가 승진자 수를 훌쩍 뛰어넘는 기업도 상당수다. 일부에서는 아예 대규모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동료를 떠나보낸 미안함, 미래에 대한 불안함, 조직에 대한 실망감 등 부정적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전염을 일으키는 시기다.
추운 겨울 거리로 내몰린 이들의 막막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기업들로서는 당장 남은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걱정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인사 시즌에는 모두의 신경이 날카롭다. 분위기가 무거우니 일도 제대로 될 턱이 없다”고 했다.
2004년 가을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는 7전 4선승제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 3연패 한 뒤 4연승해 극적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4차전에서도 9회초까지 3-4로 뒤져 벼랑 끝에 몰렸지만 9회말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보스턴의 강타자 데이비드 오티즈는 당시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한 선수로 케빈 밀라를 꼽았다. 밀라는 팀이 연패에 빠졌음에도 “우리가 시리즈를 가져올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곤 9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오티즈는 “밀라의 생각은 전염성이 강했다”고 전했다.
누구든 감정의 전파자가 될 수 있다. 필자 스스로도 이왕이면 밀라 같은 전파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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