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명대사는 폐부를 찌른다. 2001년 800만 명이 본 ‘친구’(감독 곽경택)에 나오는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도 그중 하나다. 불량 고교생인 장동건과 유오성의 담임교사가 두 사람의 뺨을 때리기 전에 묻는 말이다. 그때 장동건 유오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더 호되게 맞는다. 장의사, 조폭 두목 출신인 아버지의 직업을 대기 싫었기 때문이다.
금수저가 로펌에 많은 까닭은
돈이 많거나 권세 있고 학식이 높은 부모를 뒀다면 그런 질문을 받아도 스스럼없이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장동건 유오성 같은 경우라면 아무래도 쭈뼛거리게 마련이다. 영화에서처럼 교사가 문제 학생을 나무랄 때도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 대형 법무법인(로펌)이 변호사를 채용할 때 부모의 배경을 감안한다면 공분(公憤)을 살 일이다.
최근 법무부의 사법시험 4년 연장 발표는 로스쿨판 금수저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사법시험의 존치에 찬성하는 쪽은 로스쿨을 현대판 음서제(蔭敍制·공신의 자녀에게 벼슬을 주는 제도) 귀족학교라고 비난한다. 유력 인사 자녀들이 로스쿨에 입학해 쉽게 판검사가 되거나 대형 로펌에 들어간다는 지적이다. 반면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신참 변호사의 취업문은 바늘구멍처럼 좁다.
로펌은 본질이 사람 장사다.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를 채용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 아버지가 돈이 많고 권세가 높다고 실력 없는 사람을 변호사로 채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비슷한 능력의 두 사람 중 한 명이 유력 인사 아들딸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아무래도 그쪽으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대형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지평은 4년 전부터 변호사 지원서에 가족관계란을 없앴다. 로펌 지원자 중에는 ‘아버님이 공직(차관)에서 30여 년간 봉사하시고…’라고 교묘하게 자기소개서에 쓴 사례도 있다. 그래서 로스쿨을 방문해 채용 설명회를 할 때 자소서에 부모에 관한 내용은 적지 않는 게 좋다고 당부한다. 그 결과 로스쿨 수석 등 우수한 변호사들의 지원으로 이어졌다.
2년 전부터 ‘로스쿨 출신 고관대작 자녀 명단’이 인터넷에 나돌고 있다. 로펌 대기업 판검사에 취업한 100명이 넘는 리스트를 보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의구심을 누구나 갖게 된다. 김&장 광장 태평양 등 유수의 로펌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내년부터 외국의 초대형 로펌이 들어오는 법률시장의 완전 개방으로 높은 파고가 밀어닥칠 것이다. 그럴수록 토종 로펌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경쟁력을 더 높여야 사는 길이 열린다. ‘로펌업계의 삼성’에 해당하는 김&장은 1973년 김영무 변호사가 창립했을 때부터 인재 발굴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 초심을 잃지 말고 김&장부터 투명하게 변호사를 채용하겠다는 선언을 하라.
김&장 ‘투명채용’ 선언하라
심각한 청년실업 탓에 최근 한 조사에서 ‘금수저’가 올 한 해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로 꼽혔다. 부의 대물림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취업 경쟁에서도 뛰어난 ‘흙수저’가 밀린다면 그 사회는 위험하다. 청년 세대의 ‘수저 계급론’을 자조적인 넋두리로 치부해선 안 된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빗대면 ‘아버지 뭐 하시나’ 묻지 말라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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