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잘 모시겠다’는 각서를 쓰고 부동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불효를 저질렀다면 재산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3년 12월 아버지 유모 씨는 아들에게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옥촌의 시가 20억 원 상당 2층 단독주택을 물려줬다. “같은 집에 함께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 해제나 다른 조치에 관해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도 쓰게 했다. 이후 유 씨 부부는 2층, 아들 가족은 1층에서 함께 살았다. 유 씨는 임야 3필지와 주식도 추가로 넘겼고 또 다른 부동산을 팔아 아들 회사의 빚을 갚아 주기도 했다.
재산을 손에 넣자 아들은 각서 내용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집에 살면서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고, 허리디스크를 앓는 모친의 간병도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도우미에게만 맡겼다. 2013년 11월경 모친이 스스로 거동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요양원에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불효의 절정은 7개월 뒤 찾아왔다. 유 씨가 집을 팔아 남은 돈으로 부부가 살 새 아파트를 마련하겠다며 등기를 다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하자, 아들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 맘대로 한번 해 보시지”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결국 유 씨는 딸의 집으로 이사한 뒤 아들을 상대로 부동산 소유권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유 씨가 아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아들은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의 말소 절차를 이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1심과 2심은 아들이 막말을 하고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는 조건을 저버렸기에 주택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녀에겐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이미 민법상 규정돼 있어 ‘충실히’ 부양한다는 건 일반적 수준의 부양을 넘어선 것이라고 봤다. 법원은 “당시 부동산을 넘긴 행위는 단순 증여가 아니라 의무 이행을 전제로 한 ‘부담부 증여’로 불이행 시 계약이 이뤄졌어도 해제할 수 있다”고 해석해 유 씨가 부동산을 되찾을 길을 열어 뒀다.
그러나 불효자로 돌변한 자녀에게 소송을 건다고 해서 전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 씨처럼 각서로써 별도의 부양 의무를 특정하지 않으면 현행법상 효도라는 추상적 개념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법은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증여를 해제할 수 있도록 원칙을 두고 있지만, 이미 증여가 이뤄진 재산에 대해서는 같은 법 558조로 그 효력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재산 증여를 마친 부모는 자식이 패륜 행위를 하더라도 재산을 돌려받진 못하고 그에 상응하는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만 제기할 수 있다. 지난해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은 262건으로 10년 전(135건)보다 2배 가까이 늘었는데 “사건 수는 적어도 증가세가 매년 50% 정도로 가파르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 재산을 좀 더 쉽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558조를 삭제하는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민법에서 “증여를 받은 이가 증여자에게 배은 행위를 저질러 비난을 받거나 학대 및 모욕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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