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자녀의 역사교육에 관심을 두는 학부모가 많다.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에서다. 겨울방학을 맞아 초등생 자녀와 함께 역사박물관을 찾아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워주려는 계획을 세우는 부모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역사박물관 체험,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 계획과 전략 없이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을 찾듯 무작정 자녀를 데려가면 오히려 자녀가 지루해하거나 역사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역사박물관 체험을 진행했던 초등학교 교사들은 “딱 하나의 테마를 정한 뒤 이 기준에 따라 시대를 선택하고 박물관을 선택하며 유물을 선택하는 것이 교육효과를 높인다”고 조언한다.
하나의 ‘시대’를 정하라
방문할 역사박물관을 정할 때의 기준은 ‘어떤 시대를 공부할 것이냐’이다. ‘구석기시대’에 초점을 맞춘다면 구석기 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아둔 충남 공주시 ‘석장리박물관’이나 구석기시대 어린아이 화석이 있는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을 가보는 식. 독립군에 대한 호기심을 풀려면 서울 용산구에 있는 ‘백범김구기념관’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둘러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시대를 정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자녀의 흥미와 자발적인 선택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 평소 아이가 영화나 역사서를 보고 특히 관심을 가졌던 시대를 꼽을 수도 있다.
조성래 경기 화성진안초 교사는 “문화유산채널(www.k-heritage.tv)처럼 다양한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관심있는 시대를 선택하도록 해 여기에 맞는 역사박물관을 찾을 때 학습효과가 커진다”고 말했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여러 시대를 망라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을 경우도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순서대로 죽 둘러보는 것은 잘못된 동선. 모든 층의 유물을 둘러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가 관심이 많은) 신석기 시대 전시관을 집중적으로 찾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의 ‘유물’에 집중하라
한 시대를 정해 박물관을 찾았다면, 이제는 하나의 유물에 집중하는 일이 중요하다.
황은희 서울 창원초 교사는 “하나라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면서 역사적 상상력을 스스로 자극하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5학년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농경문 청동기(농사짓는 모습이 담긴 청동기)를 역사박물관에서 볼 경우 눈으로 슬쩍 훑고 지나가지 말고 실제 크기는 어떤지, 청동기에 어떤 모습이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수업에서 배운 내용과 머릿속에서 겹쳐보고 그 시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역사적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유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머릿속 상상의 나래를 펴다보면 해당 시대에 대한 호기심이 절로 생긴다는 것. 나와 다른 시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는 역사적 상상력과 창의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녀가 하나의 유물 앞에 계속 선 채 집중해 보고 있다면 “얼른 다른 것 보러 가자”며 재촉해선 안 된다. 만약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를 뚫어져라 본다면 “왜 토기에 구멍이 뚫렸을까” “빗살로 무늬를 넣은 이유는 과연 뭘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 좋다.
단 하나만 기억해도 OK
역사박물관을 다녀온 아이가 박물관에서 관찰했던 모든 유물과 시대적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 중요한 건 가장 인상 깊었던 한 가지를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다. 역사는 유기체처럼 사건과 사건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역사 속 한 순간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역사적 순간에 대한 공부로 이어진다는 것. 그때부터 ‘진짜’ 한국사 공부는 시작된다.
김봉수 경기 남수원초 교사는 “단 하나의 유물에 관심이 제대로 생기면 그 유물과 관련된 시대, 인물, 문화까지도 곧 궁금해진다”면서 “초등학교 내 전통회화감상부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의 경우 만약 김홍도의 풍속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결국 김홍도가 살았던 조선 영조 정조시대의 문화전반으로 역사적 호기심과 배움이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에서 보고 온 유물을 또렷하게 기억하도록 기록이나 상징물을 남겨두는 것도 좋다. 박물관 입구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박물관 입장권, 팸플릿 등을 공책에 붙여놓으면 방문 당시를 회상하고 유물에 관한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돕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하나의 시대→하나의 유물→하나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역사박물관 관람 노하우는 결국 또 다른 시대를 알고자 또 다른 역사박물관을 찾게 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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