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 씨는 과거 인사평가에서 줄곧 최상위 점수를 받았다. 업무 성과가 뛰어나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으며 승진도 빨랐다. 그러나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직후 받은 인사평가에서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사측은 그를 재교육 대상자로 선정하고 발령을 냈다.
이에 A 씨는 상관 권고를 무시하고 육아휴직을 1년이나 한 것 때문에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심증만 있었고 물증이 없어 재교육에 응했는데, 교육이 끝난 뒤에는 전에 맡던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영업직으로 배치됐다. 그제야 A 씨는 회사가 자신을 해고하기 위해 이렇게 발령을 냈다는 것을 알았다.
고용노동부가 30일 전문가 좌담회에서 내놓을 지침 발제문에는 A 씨와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일반해고의 기준과 절차가 담길 예정이다. 일반해고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노동개혁 논의에서 노동계가 “쉬운 해고에 악용될 수 있다”며 가장 큰 우려를 표시한 핵심 쟁점이었다. 올해 4월 1차 노사정(勞使政) 협상이 결렬된 것 역시 일반해고 지침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마련한 방안은 일반해고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노동계가 우려하는 ‘쉬운 해고’가 되지 않도록 기준과 절차를 깐깐하게 세우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이에 따라 인사평가 점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교육대상자로 선정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육아휴직이나 노조활동을 한 근로자가 단 한 번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저(低)성과자로 분류하고 직무 전환 교육을 하는 것 역시 엄격히 금지된다.
최대 쟁점인 일반해고의 정당성 판단 기준에는 관련 판례에 따라 ‘사회 통념상 불량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근로자의 인사평가 성적 등 업무 능력이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라면 해고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은 4회 연속 최하위 평가를 받은 건설기술직 근로자 B 씨의 해고에 대해 “인사평가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여서 업무 능력이 객관적으로 불량하다고 볼 수 없고, 본인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전보를 요청했지만 회사가 이를 거부했다”며 부당해고로 판결했다.
이에 따라 일반해고는 단순히 근무 성적만 갖고 결정할 수 없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근로자가 종사하는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은 물론이고 근로자의 직위, 근로자가 수행한 구체적인 직무 내용, 근로자가 저지른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현재가 아닌 과거의 근무태도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판단해야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저성과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따질 수 있는 기준도 마련된다. 교육 프로그램이 퇴출 목적, 사직 강요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면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이는 영업직 관리자를 ‘현장직무실습’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배치해 단순 청소 업무를 시킨 다음 엉뚱하게도 고객서비스직으로 발령을 낸 것에 대해 “근로자를 퇴사시키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판례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처럼 ‘안전장치’를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초안을 마련해서 노동계와 협의한 뒤 최종안을 결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쉬운 해고’라는 프레임으로 협의조차 거부하고 있는 노동계가 이제는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침은 소규모 사업장의 음성화된 해고를 막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경영계는 쉬운 해고를 기대하지 말고, 노동계도 지침을 무작정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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