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유종]독일의 마이스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9일 03시 00분


이유종 국제부 기자
이유종 국제부 기자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비서로 근무하는 체칠리에 브라이어 씨는 1977년부터 3년간 독일 프라이부르크 소재 막스베버직업학교에서 판매원 교육을 받았다. 일주일 중 이틀은 직업학교에서 이론을 배웠고 나흘은 식료품점에서 실무를 익혔다. 브라이어 씨는 최근 독일대사관 발행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위생, 친절 등 실무를 배웠는데, ‘고객의 주문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라’는 교훈은 지금까지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현재 다른 직종에서 일하지만 직업 소명의식은 평생 남아 있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쾰른의 침대보 직조공 조합이 1149년 처음으로 도입한 중세 길드의 견습공 교육(Lehrlingsausbildung)을 모태로 한다. 이는 도제식으로 선임에게 일을 배워 숙련공으로 성장하고 더 기술을 닦아 마이스터(장인)에 오르는 방식이다. 이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길드에 예속됐다. 오늘날 독일의 직업교육은 견습공, 숙련공, 마이스터로 이어지는 체계가 중세 시대와 같다. 다만 지금은 직업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기업에서 실무를 익히는 이원제 교육 시스템으로 발전했을 뿐이다.

독일은 현재 약 9000개 직업학교에서 85만 명의 직업교육생을 가르치고 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새로 직업교육을 받기 시작하고 2만 명이 넘는 숙련공은 마이스터 시험에 응시한다. 이런 교육 시스템에 대한 교육생의 만족도는 70%를 웃돈다. 직종은 말 관리사, 금세공사, 자동판매기 전문가, 네일아트 디자이너 등 344가지다. 직종 선호도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소매 판매원, 미용사 과정이 인기를 끌었다. 2012년에는 말 관리사가 선호 직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원제 직업교육의 강점은 무엇일까. 기업은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사관리를 할 수 있다. 또 최소 2년 이상 맞춤형 교육을 받은 검증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채용 과정에 필요한 시간, 비용도 아낀다. 부적절한 채용으로 발생하는 위험 부담도 던다. 직업교육을 마치고 입사한 직원의 충성도는 높다. 교육생도 무료 직업교육에다 일정 수준의 보수까지 받는 등 혜택이 크다. 정부가 공인하는 직업교육 수료증을 받으면 취업시장에서 매우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한 한국에선 실업계 고교가 대거 인문계 고교로 바뀌었다. 넘치는 대졸자들은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기업에선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구인-구직의 미스매치는 기본적으로 실업계 현장 기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 진학률을 40%까지 낮추는 대신 직업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독일에선 젊은이들이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마이스터로 성장해 대졸자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어 막연한 불안감에 떨지 않는다. 이제 한국에서도 현장 기술 인력을 대거 배출하는 직업교육 시스템을 만들 때다.

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마이스터#직업학교#실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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