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E초등학교의 A 군은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엄마는 생계를 꾸리기에 바빠 A 군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지난해 12월 엄마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며 더욱 자주 집을 비웠고, 기나긴 겨울 동안 A 군과 함께한 것은 컴퓨터뿐이었다.
올해 3월, 5학년이 된 A 군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게임 중독에 빠진 상태였다. 담임이 집으로 전화를 하고 찾아가기도 했지만 A 군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 역시 아이를 내버려두라고 했다. 자기 앞가림이 더 급한 엄마에게는 매일 아이의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종일 게임을 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더 편했던 것이다.
7일 이상 결석이 이어지자 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집으로 경고장을 보내고, 주민센터에 통보를 했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 집으로 찾아갔지만 A 군의 엄마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예정”이라며 돌려보냈다. 애가 탄 학교는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인근의 아동보호기관 관계자가 A 군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직접적인 학대의 흔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친권자가 대안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니 더 이상 개입할 길이 없었다.
A 군의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기관은 ‘매뉴얼’에 따른 행정 절차를 모두 밟았다.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A 군의 결석 일수는 장기결석에 따른 학업 유예 조건인 90일에 육박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 A 군은 인천 아동학대 피해자 A 양처럼 정원외 관리 대상이 되고, 영영 학교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다행히 A 군의 학교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담임은 물론이고 교장까지 나서 A 군의 집을 끈질기게 찾아가고, 인근 상담사들을 수소문해 A 군의 엄마와 상담을 하도록 했다. 그래도 모자(母子)가 달라지지 않자 마침내 교장은 매일 아침 A 군의 집으로 찾아가 직접 A 군의 손을 잡고 등교를 시켰다. 하지만 A 군은 교실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임 중독에 따른 무기력과 퇴행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교장은 A 군을 교장실에 데려다놓고 매일 오전 두 시간 동안 쓰기와 셈하기를 가르쳤다. 이어 상담교사가 한 시간씩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가슴속에 쌓인 외로움, 가정 상황에 대한 분노 등을 조금씩 털어놓으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교장이 한 달 넘게 등하교를 시키자 엄마도 조금씩 변했다. 점차 엄마가 A 군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날이 늘었다. 학교는 한 발짝 걸음을 내딛는 마음으로 A 군이 머무는 공간을 교장실에서 교무실로 옮겼다. 보조교사가 기초 학습을 시켜 주고, 연륜 있는 교사들이 애정을 쏟았다. 교장은 “아이가 3층에 있는 교실까지 올라설 수 있도록 1층에서 2층으로 밀어 올리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학교에 올 때는 모자와 옷가지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다니던 A 군은 이제 얼굴을 환히 드러내고 혼자 학교에 올 정도로 많이 밝아졌다. 내년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교실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 군은 오늘부터 다시 기나긴 겨울방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학교의 주선으로 상담을 받은 엄마와 함께 겨울방학 계획을 세웠고, 상담사가 매주 한 번씩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교장과 담임도 수시로 A 군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자칫 학교 밖으로 사라질 뻔했던 A 군의 인생을 살려낸 것은 허술한 행정 절차가 아닌 학교의 관심과 집념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