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 ‘최저가 입찰제’ 추진… 교육의 질 괜찮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1일 03시 00분


교육부가 일선 학교의 방과후학교 위탁업체 선정과정에서 사실상 가장 낮은 가격에 입찰한 업체를 선정하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과학수업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교육부가 일선 학교의 방과후학교 위탁업체 선정과정에서 사실상 가장 낮은 가격에 입찰한 업체를 선정하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과학수업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를 선정할 때 사실상 가장 낮은 가격으로 응찰한 업체를 선정하도록 해 교육의 질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29일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를 선정할 때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하도록 한 ‘방과후학교 가이드라인’을 일선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학교는 두 단계에 걸쳐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를 선정한다. 공모로 지원을 받은 뒤 1차 제안서 평가(적격심사)를 통과한 업체들 중에서 ‘최저가’인 업체를 선정하도록 한 것.

교육부는 “사전에 적격업체를 심사하는 과정을 거쳐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만큼 가격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일선 학교와 방과후학교 업체들의 반응은 다르다. 적격심사는 업체들이 대부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업체 선발의 절대 기준은 낮은 가격이 될 것이고, 결국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불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곳은 방과후학교 위탁사업을 하는 업체들의 모임인 ‘전국방과후학교법인연합’이다. 이 업체들은 당장 선정되는 것이 급한 만큼 교육 프로그램의 질을 낮춰서라도 저가 응찰 경쟁을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방과후수업의 경우 정해진 수업 이외에도 다양한 체험활동이나 부가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 이런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한 업체 관계자는 “운영 실적이 좋은 업체는 교재와 온라인학습, 시험지, 체험수업 등을 다양하게 개발해 질 좋은 교육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교육 경쟁보다는 가격 경쟁에 치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최근 몇 년간 방과후학교의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특히 영어나 수학은 동네 보습학원에 뒤처지지 않는 강좌가 생기면서 방과후학교 이용률이 높아진 측면이 있다”면서 “무조건 싼 업체와 계약을 하라고 하면 학부모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이용률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학부모들의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면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저가 입찰이 적용되면 방과후학교에서 다양한 보조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방과후학교 업체들은 학생들의 하교 지도를 위한 도우미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건비 절감 경쟁이 붙으면 이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 업체들은 영어 수업의 경우 영자신문을 보조 자료로 나눠준다거나,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에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도 단위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중소업체들과 달리 전국 단위로 방과후학교 위탁 사업을 하는 대형 교육업체들이 방과후학교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런 우려에 대해 교육부는 “1, 2차 경쟁입찰 말고도 협상이나 수의계약을 통해서도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협상을 하려면 대학교수 등 전문가급의 평가위원을 위촉해야 하는데 일선 학교에는 버거운 일이다. 수의계약은 계약가가 2000만 원 미만일 때만 가능한데 방과후학교 위탁 계약은 대부분 이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수의계약 대상이 거의 없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방과후학교#최저가 입찰제#경쟁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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