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할 때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가 컸던 일본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지역 출신의 중고교 남녀 야구 선수 16명을 초청했다. 이들이 ‘미 메이저리그의 전설’로 불리는 칼 립켄 주니어에게 야구 지도를 받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미 국무부 스포츠대사로 활동하는 립켄은 지진 피해로 우울해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름 동안 숙식을 함께하면서 지도했다.
나는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 주 애버딘 시의 양키스타디움 야구장에서 아사히신문 무라야마 워싱턴특파원과 함께 이 행사를 취재했다. 무라야마와 나는 서로 한국말과 일본어를 잘 몰랐다. 그는 일본 청소년들을 인터뷰하면서 나에게 영어로 통역해 줬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라야마의 도움으로 나는 취재노트를 빽빽하게 채울 수 있었다. 며칠 뒤 만난 우리는 각자 쓴 기사를 보여줬는데 둘 다 깜짝 놀랐다. 내가 쓴 기사는 동아일보에 눈에 띄도록 크게 실린 반면 무라야마가 쓴 기사는 맨 밑에 깔린 1단 크기였다. 일본 청소년을 초청한 미국 프로그램을 아사히신문보다 동아일보가 더 크게 보도한 데 대해 무라야마는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무라야마는 “데스크가 잘 받아주지 않는 기사가 많다”고 했다. 워싱턴에 있는 일본 특파원 숫자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고, 특파원끼리 경쟁도 치열하니 그러려니 싶었다. 기삿거리 10개를 취재해 두어 개가 나가면 성공이라고도 했다. 많은 품이 든 기사가 비록 작게 나갔지만 취재는 확실히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년 전 취재 경험이 새삼 떠오른 것은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협상을 지켜보면서 목도한 일본 언론 보도의 씁쓸함 때문이다. 협상도 시작하기 전에 일본 언론에는 미주알고주알 구체적인 내용이 흘러나왔다. 우리 쪽은 ‘깜깜’이었는데, 일본에선 신문 방송 가리지 않았다. 언론 기사가 대부분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은 공동합의문이 발표된 후에 고스란히 밝혀졌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는 조건으로 일본 정부가 재단에 10억 엔을 내기로 했다”는 아사히신문이나 교도통신 보도는 공동성명엔 들어있지 않은 내용이다. 이런 건 책임 있는 당국자가 얘기하지 않으면 기사화하기 어렵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제 완전히 종결됐다’고 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가 자국 언론에서 보도할 때는 가만있다가 한국에서 부글거리자 뒤늦게 주일 한국특파원들에게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먼저 일본 언론에 정정 보도부터 요청하는 것이 수순이지만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짜고 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 언론이 없는 얘기까지 지어가며 기사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합의를 ‘돌이킬 수 없도록’ 일본이 만들어놓은 정교한 프레임에 우리 정부가 빠져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뒤늦게야 허둥대는 청와대와 대한민국 외교부가 안쓰럽다.
아사히신문은 일찌감치 위안부 문제를 화두로 꺼내고 일본 사회의 자성과 사죄를 촉구했던 신문이다. 워싱턴에서 내가 본 무라야마 아사히신문 워싱턴특파원은 조그만 1단짜리 기사도 촘촘하게 취재해서 쓰는 기자였다. 공동발표문 뒤에 숨어 있는 무언의 메시지를 우리 정부만 몰랐는지, 아니면 한국 정부가 협상의 이면을 감췄는지는 차차 밝혀질 것이다. 지금은 두바이특파원으로 일한다는 무라야마가 이번 협상을 취재했다면 어떻게 썼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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