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원숭이의 해가 밝았다. ‘붉은색은 행운과 부를 상징한다’거나 ‘원숭이는 재치와 지혜를 상징한다’는 등의 갖가지 해석이 쏟아진다. 하지만 달력 한 장이 넘어간다고, 하루가 지났다고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거창한 의미 부여 대신 새해를 맞은 원숭이띠들의 소망을 들어봤다. ‘좋아하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초등학생부터 ‘30년간 운영해 온 정육점을 계속하고 싶다’는 60대까지. ‘소확행(小確幸)’,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하는 원숭이띠들의 마음이 이미 2016년 새해를 가슴 뛰고 설레는 날로 만들고 있다.
올해로 학교에서 가장 높은 학년이 되는 경기 군포 태을초등학교 5학년 1반 어린이 20명의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담임 정철수 선생님이 나눠준 종이에 어린이들은 또박또박 소망을 적어 나갔다.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는 모범 답안부터 ‘인피니트 콘서트 티켓을 갖고 싶다’는 대답까지. 20가지의 다양한 소망들이 쏟아진 가운데 정서현 양(12)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올백’을 맞고 싶다”고 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아이스크림을 배터지게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새해 만나게 될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한 어린이도 많았다. 이윤서 양(12)은 “좋아하는 친구와 6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어린이도 있었다. 조예원 양은 “우리 가족과 내 친구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해 선생님을 감동시켰다.
사회인이 되기 위한 마무리 과정을 밟고 있는 20대들은 ‘도전’이 잘되길 바랐다. 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인 김대원 씨(24)는 올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나 인턴을 가려고 계획 중이다. 김 씨는 “인생의 큰 도전이어서 낯설다”면서도 “농구를 좋아해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꼭 직접 관람하고 싶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인 정새미 씨(24·여)는 2015년 인턴을 하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껴 시작하게 된 수영을 더 잘하고 싶다고 했다. 정 씨는 “2016년에 아마추어 수영대회를 나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위성주 씨(24)는 “진로, 가족, 연애 이 세 가지만 잘됐으면 좋겠다”며 “대학원 입학시험을 잘 치렀으면 좋겠고 지난주 입대한 동생이 훈련을 씩씩하게 마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1980년생 원숭이띠들은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있거나 출산을 계획하고 있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올해로 결혼 3년 차를 맞는 장경희 씨(36)는 “저와 같은 원숭이띠의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혜진 씨(36·여)는 네 살배기 아들과 두 살배기 딸을 돌보기 위해 신청한 육아휴직이 끝나 올해 복직하게 된다. 이 씨는 “비록 일을 쉬었지만 업무 공백 없이 잘 적응하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지만 가끔은 가족과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LG전자의 모바일 기획 분야에서 근무하는 곽윤선 씨(36·여)는 진급을 새해 소망으로 꼽았다. 곽 씨는 “모바일과 웹 분야는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만큼 뒤처지지 않도록 공부해서 일로 성공을 거두고 싶다”고 했다.
1968년생 원숭이띠들은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직접 겪은 세대다. 홍승준 씨(48)는 “요즘 TV에 나오는 1988년 풍경에 무척 공감한다. 그때 내가 사는 울산에서도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했다”며 “이제는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세련된 만큼 ‘나’를 찾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홍 씨는 평소 커피 제조와 사진 촬영, 시 쓰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고 했다. 홍 씨는 “중학교 2학년인 작은딸이 ‘반에서 1등하면 담배를 끊어 달라’며 압박이 심해 지난해 초부터 담배를 끊었다. 오래전 금연 실패 경험이 있는데 올해는 부디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용민 씨(48·여)는 자신이 조직한 협동조합 동아리의 수익 창출을 새해 소망으로 꼽았다. 조 씨는 “청소년 진로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주부들과 조직한 ‘북서울신협 협동조합교육 동아리’에서 올해부터 도봉구의 청소년들에게 직접 진로 교육을 해줄 계획”이라며 “우리 조직이 수익도 내고 경력단절여성의 일자리를 더 창출하는 곳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로 환갑을 맞는 1956년생들은 자녀의 취업과 결혼 걱정이 앞섰다. 박상호 씨(60)는 “무엇보다 경제가 좋아져서 자식들의 취업이 잘되고 또 결혼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요즘 세대들은 고생 없이 자랐는데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이 많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도심인생이모작센터에서 자서전 쓰기 강의를 하는 장영희 씨(60·여)는 “올해 두 번째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장 씨는 지난해 11월 24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또래 베이비부머 17명과 함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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