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말 악성종양이 발견돼 1년 남짓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A 씨(여·당시 65세). ‘손쓸 수 없는 말기 뇌종양’ 진단을 받았던 그에게 의사는 “한번 해보자”며 임상시험 단계의 약물 투여를 권했다. 의식이 또렷해지는 효과는 봤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A 씨는 지난해 1월 결국 숨을 거뒀고, 그에게 투여됐던 약품의 개발은 이후에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약효와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아 임상시험 중인 ‘시험약’을 중증 환자에게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난치성 환자에겐 한줄기 희망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임상시험 목적이 아닌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게 마지막 치료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승인한 건수가 2013년 493건, 2014년 490건, 2015년(10월 기준)에는 575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임상시험은 개발 중인 의약품을 사람에게 투여해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고 이상 반응을 확인하는 절차다. 이런 임상시험용 약품을 다른 치료 수단이 없고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게 예외적으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도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식약처가 최근 발간한 ‘응급환자 등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안전 사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의사는 시험약의 사용에 앞서 환자와 가족에게 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의 자발적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제약사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미(未)허가 상태의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인 만큼 무상으로 제공하는 점도 환자에겐 선택의 이유다. 환자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중대한 이상 반응이 발생하면 ‘임상시험관리기준(KGCP)’에 따라 식약처장에게 보고하는 절차도 마련돼 있다.
○ 위험한 ‘인체 실험’의 함정
하지만 임상시험용 의약품은 개발 중인 약이어서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임상시험 피험자 가운데 ‘중대 이상 약물 반응’을 일으킨 경우는 476건에 달한다. 부작용으로 입원한 사례가 376건이고, 임상시험 도중 사망한 예도 4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험약의 사용이 난치성 환자의 치료 목적을 넘어 손쉬운 임상시험을 위한 편법으로 사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이 확대되면서 ‘실험용 인간’의 필요성 또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세계 7위인 임상시험 건수를 2020년까지 5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임상시험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에는 임상시험에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저소득층과 난치성 질환자의 임상시험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상호 한양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임상시험용 약품 사용이 불가피한 환자도 있지만 말기 환자의 다급한 마음을 이용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보건 당국이 승인 절차를 더 정교하게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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