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창원]의혹 해소 못한 정명훈 사퇴의 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4일 03시 00분


김창원 사회부 차장
김창원 사회부 차장
‘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전 예술감독이 지난해 12월 30일 연주를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2005년 취임 이후 10년 동안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화려한 업적에 비하면 너무 갑작스럽고 초라한 퇴장이다. 2014년 12월 당시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성추행과 막말을 했다”는 직원들의 호소문으로 촉발된 서울시향 사태가 1년여 만에 정 감독의 자진 사퇴로 이어진 것이다.

정 전 감독은 출국 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박 전 대표의 비인간적 처우를 견디다 못한 직원들이 이를 고발했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당해 조사를 받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취지였다. “여태껏 살아왔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불편한 감정마저 엿보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서울시향 사태 직후인 지난해 1월부터 이 사건을 취재해 온 기자로서 정 전 감독의 이 같은 발언에 동의하기 어렵다. 1년간 서울시향 직원 등 사건 관계자들과 경찰조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성추행’ 의혹이 그랬다. 여성 대표의 남성 직원 성추행은 박 전 대표를 한 방에 훅 보낸 사안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로 알려진 직원 곽모 씨는 오히려 술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에게 성추행 목격을 증언해 달라고 회유한 사실이 드러나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막말 폭언에 시달렸다는 직원 10여 명 역시 경찰조사에서 사실관계가 애매한 ‘전언의 전언’을 옮겨가며 진술을 번복했다.

결정타는 정 전 감독 부인 구순열 씨의 개입 혐의다. 경찰이 지난해 서울시향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에는 구 씨가 정 전 감독의 비서인 서울시향 백모 과장에게 ‘시나리오를 잘 짜서 진행하라’거나 ‘주고받은 문자를 삭제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확인 조사 중이지만 구 씨가 보낸 메시지 중에는 ‘박 대표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라’ ‘박 대표를 형사고소하라’라고 지시한 글도 있다. 또 백 과장은 ‘사모님이 어드바이스해 주신 대로 남성 직원 곽 씨를 섭외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구 씨가 백 과장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수백 건에 이르고 그 시점이 2014년 11월 중순 서울시의회가 정 전 감독의 항공료 및 호텔비 횡령 의혹을 추궁하던 시기와 겹치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정 전 감독은 “구 씨가 직원들의 피해 구제를 돕기 위해 조언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실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서울시향 사태의 결론은 결국 경찰수사 결과에 달려 있다. 공정한 결과가 나오려면 정 전 감독과 부인 구 씨가 스스로 나서서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한다. 만약 서울시향 사태가 정 전 감독과 관계가 틀어진 박 전 대표를 쫓아내기 위한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면, 이야말로 정 전 감독의 말마따나 ‘문명사회에서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김창원 사회부 차장 changkim@donga.com
#정명훈#사퇴#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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