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PC방 이용하려면 지문 찍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5일 03시 00분


신분증 감별기 설치 늘어… 대학 새내기 등 “우리가 범죄자인가요”

서울 영등포구의 한 PC방에 설치된 신분증 감별기(오른쪽)와 지문인식기(왼쪽)를 합친 복합기계. 서상희 기자 with@donga.com
서울 영등포구의 한 PC방에 설치된 신분증 감별기(오른쪽)와 지문인식기(왼쪽)를 합친 복합기계. 서상희 기자 with@donga.com
올해 대학에 입학할 예정인 김모 군(19)은 최근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 밤늦게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PC방을 찾았다. 오후 10시 이후 출입할 수 없었던 작년 기억을 떠올리며 주민등록증을 들고 당당하게 입장했지만 곧 아르바이트생에게 제지당했다. “신분증을 기계에 넣고 엄지손가락을 지문인식기에 3초 동안 갖다 대라”는 것이었다.

김 군은 타인에게 지문을 공개하는 것이 왠지 찝찝했지만 PC방을 이용하기 위해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내 기계와 연결된 컴퓨터 화면에 신분증 지문과 김 군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판정이 났다. 그런데 이번엔 사장이 막아섰다. “미안하지만, PC방은 술집에 적용되는 법률과 달라서 고교 졸업증명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화가 난 김 군은 “범죄자도 아닌데 지문까지 찍는 건 개인정보 침해 아니냐”며 “애초에 PC방 심야 입장이 안 되는 거였다면 저 컴퓨터에 저장된 내 지문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신분증 위조가 많아 지문 확인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말만 반복하는 PC방 측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최근 PC방에서 신분증 감별기와 지문인식기를 합친 복합 기계를 설치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인권 감수성이 높은 요즘 10대들이 “신원조회를 당하는 기분”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현장에서 갈등을 빚는 일이 잦다.

이 기계를 사용하면 이용자가 제시하는 신분증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본인의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신분증 감별기에 신분증을 넣어 위조 여부를 확인한 뒤 기계와 연결된 지문인식기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신분증에 기록된 지문과 실제 지문이 일치하는지 검사받는 것이다. 시중가격이 80여만 원에 이르지만 판매업체들은 “다한증, 습진, 흉터로 인한 지문인식 실패율까지 현저하게 줄였다. 이 세상 신분증 검사가 필요한 모든 사업장의 고민이 해결되는 날까지…”라고 광고하며 성업 중이다.

본래 이 기계는 미성년자의 출입이 금지된 술집, 나이트클럽이나 술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에서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PC방에 10대들이 위조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습득한 성인 신분증을 들고 오는 일이 많아 요즘엔 PC방에서 더 많이 쓰는 실정이다. 현행법상 10대는 고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PC방에 출입할 수 없다.

강서구 화곡동의 PC방을 이용하고 있는 박모 군(19)은 “PC방에서 지문인식기를 사용한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로그인 서비스에 내 지문이 저장돼 있었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재환 군(19)도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처럼 느낀다면 인권침해 아닌가. 요즘은 은행에 있는 개인정보도 다 털리는 세상인데 개인 PC방에 저장된 내 주민등록증과 지문이 유출될까 두렵다”고 했다.

PC방 업주들은 경찰, 구청의 불시 단속 때문에 돈 들여 이 기계를 설치할 수밖에 없다고 맞받았다. 처음 적발되면 벌금 50만 원이지만 3번 누적되면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다. 신월동 H PC방 매니저는 “기분 나빠하거나 거친 욕을 하는 손님도 있지만 청소년들의 눈속임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고, 단속도 심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생명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pc방#지문#신분증감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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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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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5 09:11:07

    그럴 가능성이 많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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