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아저씨는 어떻게 섹시해지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5일 03시 00분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세기 말, 큰 인기를 모은 담론이 있었으니 바로 ‘아줌마론’이다. 당시 언론과 광고에 뽀글뽀글한 파마에 난해한 패션을 한 아줌마들이 자주 등장했고, 해외의 한 관광청에서 ‘소비력 높은 한국 특유의 집단’으로 아줌마(Adjumma)를 소개함으로써 국제적 명성도 얻었다. 한 사진작가는 다양한 아줌마들을 찍어 큰 성공을 거뒀다. 한국에서 특정 집단의 전형성을 그처럼 강렬하게 시각화한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심리학에서 사회학에 걸쳐 많은 ‘아줌마’ 연구 논문들이 쏟아졌다. 이들을 종합해 보면, 1980년대 이후 아줌마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해지고 경제력이 확대되면서 사회적으로 표출된 행동이 전통적인 아줌마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게 됐다는 것인데, 대체로 ‘염치없고 뻔뻔’하며 ‘미적 감각이 없다’는, 다분히 부정적인 속성을 가진 집단으로 형상화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 역동성의 근원’이라는 설명은 어쩐지 후환에 대비한 빈약한 변명 같았다. 당시의 ‘아줌마론’이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한 개인이 결혼으로 아줌마란 사회적 속성을 획득하여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집단이 됐다면 그와 결혼한 또 다른 개인은 그 이후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다. 그 역시 매우 독특한 사회적 형질을 가진 뭔가로 변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최근 우리는 세기 말의 아줌마에 비견할 만한 독특한 사회적 집단을 보게 됐다. 아줌마를 아줌마라 부르면서 굳이 자신은 삼촌, 오빠라고 말하고 ‘불룩한 배 슈트빨…나는 뻔뻔한 꼰대’(싸이, ‘아저씨SWAG’)인데 ‘걷기만 해도 섹시함이 좔좔’(박진영, ‘아임소섹시’) 흐른다는 한국의 아저씨 말이다. 감각에 강박된 욕망을 끄집어낸 박진영의 도발을 사랑했던 나는 지난 연말 아직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고 엉덩이를 흔드는 그를 보고 ‘아버지가 춤추는 것 같았다’ ‘토할 뻔했다’라고 말한 젊은 가수들의 말에 슬프게 공감했다.

아줌마론에 비교하자면, 1980년대의 경제 호황에 힘입은 경제력과 여유, 의술의 발달 덕에 사회적으로 표출된 행동이 전통적인 아저씨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운 좋게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 번도 주류와 주인공 자리를 내놓지 않았던 이들은 자신의 이해가 곧 보편적 발전이라고 믿기에 큰 목소리를 내고, 젊은이를 무시하며, 아줌마를 혐오하면서 유머를 휴대전화에 적는 것을 스마트하다고 한다. ‘맨스플레인(남자가 설명해 줄게)’이 아저씨의 국제 기준이라면 한국 아저씨는 ‘와이 익스플레인(설명해야 해?)’이다. 생각 회로에 동맥경화가 심해서다. 모든 거래와 협잡 뒤에 이제와 솔직해지고 싶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아저씨 재벌 총수도 있거니와 ‘염치없고 뻔뻔’하며 등산복을 뒷산부터 업무와 예식에도 입는 무례와 무감각은 한국 아저씨의 독특한 사회적 형질로 보인다.

‘아임소섹시’라고 말하는 아저씨는 성희롱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저씨는 섹시하지 않은 한국의 사회적 집단이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되지 않으려면? 숨을 쉬는 매 순간마다 ‘내’가 아저씨가 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이와 상관없다. 한국에선 아차, 하는 순간 아저씨가 되기 때문이다. 섹시한 건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남자의 긴장한 팔과 가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눈빛이다. 세상의 안전을 위해 온 마음으로 자동차를 후진하는 남자가 섹시하듯(후방카메라는 유감이다). 대단한 철학이 아저씨를 사람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아저씨SWAG’에서 반복하듯,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Manners Maketh Man).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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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추천 많은 댓글

  • 2016-01-05 06:26:42

    그 아줌마 그 딸들이 요즘 남자를 평가할때 키가 작으면 루저, 못생겼으면 후저, 돈이 없으면 꺼져, 위의 3가지 모두 없으면 뒈져 교양이 여자를 만든다

  • 2016-01-05 08:26:08

    아줌마들이 애들 가정교육을 얼마나 철처한지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애들한테 '너네집 몇평? 아빠 뭐해?' 물어보고 평수 큰 아파트에서 사는 애들과 놀고 아빠 직업을 보고 사귀라고 세뇌교육. 이것이 아줌마 수준 아닙니까?

  • 2016-01-05 09:57:17

    버스나 지하철만 타면 빈자리를 향해 몸을 날리는 남녀노소들, 버스만 도착하면 앞문으로 타려 줄선사람들 무색하게 뒤문으로 잽싸게 올라서는 남녀노소들..아줌마, 아저씨만의 문제는 아닌듯하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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