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억대 도박 사이트 운영자, 필리핀으로 도피하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5일 15시 37분


필리핀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일 줄 알았다.

2일 오후 4시 반경(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공항 입국장. 중국발 비행기에서 내린 임모 씨(40)가 입국 절차를 밟았다. 그는 2013년 5월 중국으로 건너가 2014년 6월까지 판돈 706억 원 규모의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300억 원의 수익을 남긴 혐의로 그해 9월 인터폴 적색수배가 돼 있었다. 쫓기는 신세였지만 도박 사이트로 번 돈으로 중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귀족처럼 생활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필리핀 입국 당시에도 검은 중절모, 명품 청바지로 잔뜩 멋을 부렸다.

필리핀 이민청은 임 씨가 한국인 중요 수배자인 사실을 확인하고 필리핀 경찰청에 파견된 코리안데스크와 한국 인터폴에 이를 통보하고 임 씨 입국을 거부했다. 임 씨가 중국으로 돌아가려 하자 입국심사 보류자 대기실에 30시간가량 머물게 하고 한국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 결국 임 씨는 4일 한국으로 송환돼 죗값을 치르게 됐다. 경찰 관계자는 “임 씨가 필리핀을 새로운 사업 근거지와 도피처로 삼으려 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필리핀으로 도피하려 한 인터폴 적색수배자 임 씨를 한국으로 강제송환했다고 5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강신명 경찰청장이 필리핀 방문했을 당시 한국인 중요 수배자가 발견되면 한국 경찰에 통보·인계하는 방안에 협의한 이후 첫 사례다. 경찰은 필리핀으로 도피할 가능성이 큰 중요 수배자 15명의 명단을 필리핀에 전달했다.

한국인 범죄자에게 필리핀은 황금도피처로 꼽혔다. 필리핀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은신이 쉽다. 9만 명의 교민이 살고 있어 물가도 싸다. 이들은 필리핀으로 건너가 한국인 납치를 하거나 불법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거엔 필리핀으로 입국하면 추적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젠 입국 단계에서 차단할 수 있게 됐다”며 “필리핀과 양해각서를 체결해 중요 수배자 수를 단계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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