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광주 남구 양림동이 의향과 예향 광주의 뿌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시는 ‘사랑과 예술의 언덕 양림’이라는 35쪽 책자를 통해 양림동이 의향의 뿌리이자 예향의 자부심이라고 평가했다. 책자는 양림동은 1900년대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근대 의료·교육의 씨앗을 처음 뿌렸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양림동에는 현재도 선교사 사택, 묘역 등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책자는 양림동이 의향의 뿌리가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양림동은 1919년 3월 10일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농업학교 학생과 시민 1000여 명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채 행진을 했던 곳이다. 당시 수피아여학교 교사와 학생 22명은 일제 헌병대에 체포돼 4개월에서 1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수피아여학교 등은 이후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양림동 곳곳에는 항일정신을 담은 유적과 기념물들이 남아 있다.
불의에 항거하던 양림정신은 유신시대를 거쳐 1980년 군부독재 시기에도 목소리를 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양림동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피터슨 목사가 헬기를 탄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기총소사(機銃掃射)하는 것을 세계에 알렸다. 양림동에 있는 광주기독병원은 부상자 등을 치료했다.
선교사들 덕분에 근현대 문물을 접한 양림동은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했다. 책은 중국에서 국가 음악가로 지칭되는 정율성(1914∼1976), 검은 머리의 차이콥스키로 평가받는 정추(1923∼2013)가 양림동에서 태어났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 양림동은 다형 김현승 시인(1913∼1975)이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김현승 시인의 흔적은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는 다형다방 등이 있다고 책자에 적혀 있다.
책자에는 또 양림동이 한국 현대문학 명작들이 잉태된 곳이라는 설명도 들어 있다. 소설가 황석영은 양림동에서 소설 ‘장길산’을 썼다. 또 작가 문순태는 양림동에서 수몰민의 아픔을 담은 ‘징소리’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시인 곽재구는 양림동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남광주역을 모티브로 시 ‘사평역(沙平驛)에서’를 지었다.
고향인 양림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화가 한희원, 최인준을 비롯해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등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책자에 소개됐다. 영화감독 이장호와 뮤지컬 작가 윤호진도 각각 양림동 선교사 서서평과 정율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 밖에 양림동은 근현대 선교사 사택과 한옥이 있어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파리 몽마르트르가 순교자의 언덕에서 유래된 이름이듯 양림동은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바탕으로 정의로움과 예술 혼을 키워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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